너 참 불쌍타!


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 김영하, 마음산책, 2012-05-15, 초판출간 2005년.


  

   초판을 읽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그새 책은 재출간되었고 작가는 매주 텔레비전에 나왔다. EBS 세계기행 첫편에 김영하 작가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EBS 세계테마기행을 볼 때마다 세계 곳곳을, 특히 오지를 기행하고 싶은 갈망에 휩쓸렸는데 세계를 기행하는 일은 늘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서 하고 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기행할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기쁨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위안삼는다. 그렇게 세상이 변하는 동안 책을 읽는 일만은 버리지 않고 살았구나 하면서. 그러고 보면 내게도 책읽기가 삶에서 ‘랄랄라’를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랄랄라 하우스’는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다. 소설과는 다르게 비교적 평이하게 쓴. 일상의 이런 정도쯤이야.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토록 깔끔하다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는 담백하면서 깔끔한 느낌이 있다. 그속에선 어떤 신경질이 느껴지지 않아서일 지도 모르겠다. 살다보면 맞닥뜨릴 그런 순간들을 점잖은 생각으로 전환하는 일상이 부럽다. 생각해보니 방송에서 본 작가의 스타일이 이렇구나 싶다.

  소소하게 일상을 훑어보고 더불어 생각하는 랄랄라 하우스는 2005년 첫출간되었을 때 유행하는 sns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싸이월드의 형식을 차용했다. 방문자들의 댓글반응까지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안 된 사이에 지금은 사라졌으니 인터넷 프로그램의 생명력이 얼마나 급속하게 변하는지 새삼 실감한다. 그토록 열렬한 인기를 구가하던 프로그램의 소멸이 과학기술발달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급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레미제라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적 장발장으로 먼저 이 소설을 읽었을 듯하다. 장발장이 아닌 레미제라블은 엄청난 길이의 소설이었다. 레미제라블을 읽고 나서 빅토르 위고의 이 소설에 대해 박수를 쳤다. 아, 이아호! 소년소녀용 소설이나 청소년용, 만화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이 레미제라블의 제목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랄랄라 하우스에 초기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 번역될 때의 제목을 소개했다. ‘너 참 불쌍타“. 정말로 배꼽 빠지게 웃음이 났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었기 망정이지 소리내어 깔깔거렸다면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기이한 웃음에 한번씩 작업을 멈추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어도 변한다. 언어가 가진 뜻이 변하고 새로운 언어가 생겨나기도 소멸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생각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 역시도 필요를 기반으로 한 생각의 전환이 가져오는 것이니까. 너 참 불쌍다! 마구 웃었는데 갑자기 짠해진다. 휘몰아치는 변화의 한복판에서 노회한 사고로 일관하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과학기술과 언어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변화, 변화, 변화. 이 말이 고통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내적인 요구에 의한 것인지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환경변화에 적응하려는 모든 인간들의 노력이 안쓰럽게 느껴지긴 한다. 그냥 너 참 불쌍타 싶다.

  랄랄라 하우스의 부제는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이다. 헬조선 사회에서 묘하고 유쾌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일은 버겁지만 때론 소소한 일상에 대해 묘하고 유쾌한 생각을 갖는 것이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된다. 청량제같은. 어쩌다가 아니라, 매일을 묘하고 유쾌한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이 책에 있는가.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고. 작가는 작가라는 자신의 환경 속에서 경험을 쌓고 또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 자신의 환경 내에 그것을 바탕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생각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환경’에 대한 부러움일지 모른다는, 그 경험에 대한 부러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사고를 지배하니까. 하지만 사고를 통해 환경을 지배하는 힘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 방법의 차원에서 이 책 역시 나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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