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에 대한 불안 현대의 문학 이론 44
해럴드 블룸 지음, 양석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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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태어나지 못한 불안


영향에 대한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 A Theory Of Poetry Harold Bloom


해럴드 블룸, 문학과지성사, 2012.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일까. 블룸이란 이름에 끌리는 것은. 외국인 이름을 두고 특별히 좋고 예쁘다는 느낌이나 생각을 가지진 않았는데 유달리 생각나는 이름들이 있다. 블룸이 그 하나인데, 이유없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블룸, 블룸 말할 때의 발음의 유연함과 꽃피움의 뜻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블룸 블룸하고 있으면 주위에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느낌이 드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레오폴드 블룸과 Bloomsday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니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영향인 모양이다. 해럴드 블룸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비평가를 알게 된 것도 오로지 그의 성이 ‘블룸’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밀리기엔 억울하게도 해럴드 블룸은 유명한 문학비평가이다. 많은 책들에 ‘해럴드 블룸의 추천’ 태그가 붙어 있다. 1930년생이니 지금은 87세의 이 비평가는 ‘비평가의 거인’이라 불리며 40권이 넘는 저서를 썼다. 해럴드 블룸에 대한 설명, 평가에는 그의 비평이 시대의 주류 비평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블룸은 ‘보수주의’ 비평가로 분류된다.

  낭만주의 시인들에 대한 비평을 주로 해온 블룸의 대표적인 비평 개념 ‘영향’, 이 책은 “영향”에 대한 이론을 담고 있다. 대체로 문학비평이나 문학이론서가 독특한 어휘를 사용하며 문장을 힘들게 써내려가는 까닭에, 더구나 번역서이기에 이해를 하기 위한 서글픈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이 책 <영향에 대한 불안>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해럴드 블룸은 자신의 비평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장르에서 개념을 차용했는데 철학과 프로이트 이론이었다. 이 두 개념이 어떻게 문학을 설명하는데 ‘이용’되는지 지켜보는 흥미가 있다.


시적영향은 ―강하고 진정한 두 시인과 관계할 때―항상 이전 시인을 오독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이 오독은 실제로 필연적으로 오역인 창조적 교정의 행위이다. 풍부한 결실을 낳는 시적 영향의 역사, 즉 르네상스 이후 주요 서구 시 전통은 불안과 자기구원적 풍자, 왜곡의 역사이며, 도착적이고 의도적인 수정주의의 역사이며, 이 수정주의 없이는 근대시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럴드 블룸은 시인이 시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선배 시인의 ‘영향’을 받을까 ‘불안’을 끊임없이 겪는다고 말한다.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위대한, 독창적 시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 <영향에 대한 불안>이 다루는 핵심 개념이다. 여기에 앞서 말한 철학의 개념과 프로이트의 방어 기제를 끌어와 선배 시인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심리적 갈등과 투쟁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해럴드 블룸에게는 ‘모방이 창조’라는 말보다 선배와의 차이, 왜곡, 오류가 문학 창작에서 더욱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해석을 두고 벌이는 선배와의 경쟁. 그러니까 선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자각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과정을 여섯 개의 수정률― 클리나맨, 테세라, 케노시스, 악마화, 아스케시스, 아포프라데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클리나맨은 선배 시에 대한 오독, 이탈, 타락으로 수사학적 아이러니에 해당한다. 클리나맨을 위한 투쟁으로 블룸은 반동형성을 방어기제로 설정한다. 테세라는 도자기 파편을 의미하는 것으로 테세라는 연결성을 의미한다. 여기에 “자기 자신으로의 선회”와 ‘반전"을 방어기제로 설정한다. 욕동의 대상이 타자에서 자신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테세라는 복원과 재현인데 이것은 새로운 불안과 수축을 야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케노시스로 선재 시에 대한 ’비우기‘를 의미한다. 격리, 취소, 퇴행의 방어기제로 투쟁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자신 속에서 선구자의 힘을 취소하는 것이 자아를 선구자의 입장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처럼 프로이트가 설명한 방어기제 이론을 적확하게 자기 의미화하며 <시적 영향에 대한 불안>을 설명하는데 그것이 프로이트 이론이라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여러 비판과 비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문학, 역사, 과학, 의학 등 전반에 걸쳐 거둔 영향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프로이트에 맞선 악마화, 여섯 개의 수정률이 필요하다 싶다.


허구의 세계는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무한히 상상하는 내면의 자아를 매우 밀접히 알지 못하면서 그런 자아를 재현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말로에게는 변화가 거의 없다. 예를 들면 그의 과시적 인물들은 모두 똑같은 과시적 인물이고, 희생자들도 똑같은 희생자이며, 마키아벨리적 인물들도 똑같은 악마적 인물이다. 탬벌레인, 바라바스, 마키아벨리적 인물들도 똑같은 수사법을 공유하고 똑같은 욕망으로 어지러워한다. 셰익스피어는 말로에게서 이탈하면서 구별을 창조했다. 이보다 더 큰 승리를 거둔 시적 영향은 없다.


  창조적 작가라면 누군가의 이름에 종속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흔히 다른 작가들과 비견되고 실제로 '누군가‘를 이야기할 때면 그 이전의 선배 작가를 빌어 표현하는 경우가 작가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제2의 누구다! 이런 수식에 감사함을 표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불편과 구속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자기 인정욕구, 자기과시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할 때 뒤늦게 태어난 이유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먼저‘의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해럴드 블룸의 ’영향‘. 그리고 그속에 닮고픈 의지와 벗어나고픈 욕망이 공존하고 있어 ’불안‘한 상태의 ’젊은이‘들을 생각해본다. 이것은 비단 ’문학‘에 대한 것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도 흔들림없이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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