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작은 친구들 세트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미시시피의 아이들


작은 친구들, 도나 타트, 은행나무, 2017-02-28.


  사람들로 하여금 ‘천재’라는 평을 받는 작가의 기분은 어떨까. 왜인지 이 평의 당사자인 도나 타트는 전혀 괴이치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전진할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그 스타일이 소설을 ‘적게’ 쓴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소설을 자주 발표하는 대신 한번에 ‘길게’ 쓰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삼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 편의 장품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작은 친구들」이 「비밀의 계절」과 「황금방울새」에 이은 신간인줄 알았더니 그동안 국내 번역 출간이 되지 않은 2002년 출간작이다. 앞의 두 작품은 상당히 흥미있게 읽었다. 그렇기에 도다 타트의 작품을 기억하고 책을 선택함에 주저함이 없었는데 최근작이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 아쉬웠다. 10년에 한번 책을 내는 과작 작가라고 하는데 2013년도에 책을 출간했으니 그럼 2023년도에는 신간이 나오려나.

  세밀한 묘사와 서사가 작가의 특징이다. 이것이 작품의 양으로 연결되는 것도 같다. 세 작품 모두 국내 출간에 2권짜리였다. 그렇기에 어느 지점에 가면 약간의 지루함이 생길 때도 있다. 이전 출간된 두 작품에 비해선 조금 지루함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결말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가지는 느낌일지 모르겠다.

  결말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은 이상하다. 이 작품은 1960년대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아홉 살 소년 로빈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12년 후,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로빈의 죽음에 대해 로빈의 동생 해리엇이 그날의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는 동안 누가, 로빈을 죽였는가에 대해 풀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소설에서 이 궁금증을 풀어주던가? 추리와 미스터리 소설인가 생각하게끔 시작한 소설은 따지고 보면 로빈의 살인자를 찾는 방향으로 흐르긴 한다. 단지, 일반적으로 보아온 추리소설의 스타일을 뛰어넘어 조용히, 그리고 아이의 시선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밟아가고 있다.

  그렇다. 이 소설은 그냥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해리엇의 노력과는 별개로. 어쩌면 이 소설에서 해리엇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장식같기도 하다. 해리엇만이 뚜렷하게 양각으로 부각되고 다른 이들은 정적이다. 이 정적인 흐름에 홀로이 급류를 타고 있는 해리엇이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으로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으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가족들은 침체되어 있다. 그들은 로빈이 자신의 집 마당에서 사망한 이후로 마치 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정적으로 변해 버렸다. 그들은 과거에 더 머물러 있었다.


가족 중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앨리슨이 설명하려 했어도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항상 추억에 포위되어 현재와 미래가 오로지 과거의 반복이라는 도식으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앨리슨처럼 세상을 보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기억―연약하고 흐릿하지만 찬란하고 기적 같은 기억―이란 삶의 불꽃 그 자체였고, 그들은 모든 말을 과거로 시작했다.


  해리엇의 엄마는 그날 이후 약에 취해 늘 잠들어 있었다. 해리엇의 언니 앨리슨도 잠들어 있는 시간이 많고 항상 약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수다스러운 클리브가의 자매들, 그러니까 해리엇의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들도 슬픔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그 사건 이후로 해리엇의 아빠는 다른 지역에서 가족은 방관한 채 생을 즐기고 있다. 해리엇의 가족은 12년 전 그날 이후로 항상 음지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똑똑하고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해리엇은 이런 음지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그날의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파헤치려는 결심을 한다. 이른바 탐문과 수사를 시작하며 첫 번째 용의자를 알아냈다. 이제 사건은 어린 날 로빈과 같은 나이였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문젯거리’인 래틀리프가의 형제들을 쫓는 것으로 나아간다.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기심과 열정으로 해리엇은 자신을 추종하는 친구 할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지만, 그것은 당연 험난하고 위험을 동반한다. 톰 소여, 허클베리 핀의 모험처럼 위험한 모험을 즐기는 개구쟁이들의 여정이 아니라 가족에게 드리운 그늘을 걷어내고픈 어린 아이의 조용하고 담백한 전진이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핵심으로 보인다. 긴, 호흡에서 1960~1970년대의 미국 미시시피의 분위기를 볼 수 있는데 흑인에 대한 차별과 빈부 격차의 상황을 주된 이야기의 흐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해리엇 가족들의 상황에 무관했다고도 말할 수 없기도 하다. 시간의 변화만큼 해리엇을 둘러싼 가족들과 일상의 변화도 일어난다. 이모 할머니 리비의 죽음이나, 해리엇이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며 애착을 가졌던 가정부 흑인 아이다와의 헤어짐, 자신이 뒤쫓던 범인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 이 여정에서 해리엇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변해가는가는 주요한 부분이다.

  

해리엇은 <보물섬>에서 히스파니올라호 옆 피로 따뜻해진 바다에서 떠다니던 해적 이스라엘 핸스를 생각했다. 그 대단한 여울은 악몽 같으면서도 아주 멋졌다. 공포, 가짜 하늘, 엄청난 환각 배를 잃었다. 해리엇은 그 모든 것을 혼자서 되찾으려 노력했다. 해리엇은 거의 영웅이 될 뻔했다. 하지만 이제 해리엇은 자신이 영웅이 아닐까 봐, 전혀 다른 것일까 봐 두려웠다. 


해리엇이 원하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해도, 해리엇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도 나서서 노력했다는 사실에 쓸쓸한 위안이 있었다.


 역시 미국이란 나라의 분위기인가 싶게 12살 해리엇이 총기를 다루는 장면은 놀랍게 다가왔다. 범인을 찾기 위한 그 여정들을 가족들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마치 한여름 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당사자인 해리엇에게도 마치 환각의 일처럼 여겨지는 이 여정은 해리엇 스스로에게 영웅의 길이었느냐 아니었느냐는 물음을 갖게 한다. 그것은 해리엇이 한가지 목표에만 취중하며 쉽게 생각하고 간과한 문제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하게 한다.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을, 이 여정 속의 모든 것들을 해리엇은 차곡차곡 되새겨 볼 것이다. 똑똑한 아이니까. 슬픔을 알고 그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아이니까. 아무리 조숙하다 한들 열두 살의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의 참 아픈 성장통. 아이를 둘러싼 환경, 관계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물론 할머니는 나쁜 의도가 전혀 없었다. 검은 평생 죽어라 일만 하다가 망가진 불쌍한 노인일 뿐이었다. 평생 아무것도 갖지 못했고, 어떤 기회도 없었으며, 기회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왜 손자들에게도 기회가 없다는 뜻이 되는지 유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 속에서 대립적으로 등장한 클리브가와 래틀리프가를 보다 눈에 띄는 점이 클리브가는 모두 여성들, 래틀리프가는 남자들의 세계였다. 물론 래틀리프가에는 할머니, 검의 존재가 있긴 하지만. 클리브가는 부유층의 특성과 시끌벅적함이 사그라진 상태로 래틀리프가는 가난한 백인층으로 약물에 빠져 시종일관 환각 상태인 형제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가정의 로빈과 대니는 어린 시절 우정을 나누며 잘 지낸 친구인데, 세월은 ‘가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음울의 분위기 속에서 해리엇은 스스로 영웅이 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고…. 변해갈 수밖에 없는 대니의 모습이나 래틀리프가 유진의 저 말이 참 안타깝게 울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