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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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불안정한 혼합물


수잔 이펙트, 페터 회, 현대문학, 2017-04-20.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긴 하지만 본질적인 것 아닌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사용하며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재능없음에 좌절하기 바쁜데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것을 누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쩐지 재앙같기도 하다. 어떤 재능인가가 더 중요한 것인가.

  수잔은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 자신도 모르게 솔직한 말을 거침없이 하게 만드는 이 능력. 그리하여 그것은 ‘수잔 이펙트’라 명명된다. 이 능력의 필요성이 인정되다가도 수잔 이펙트가 내게 적용되면 그땐 또 그렇게 좋은 기분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긴 한다. 이런 능력을 가진 수잔이 심리학자라거나 상담사였다면 혹은 범죄 조사자였다면 재능에 맞는 직업을 선택했구나 하겠지만, 수잔은 물리학자다. 하긴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수잔을 붙들고 자기 속내를 마구 드러내고 있다면, 그 입장도 곤란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니 평범하지 않은 삶을 꿈꾸는 이에겐 이 수잔의 평범한 삶에 대한 욕구가 과연 진심의 욕구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너희가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인생을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게 뭐였는지 아니? 평범한 삶을 사는 거야. 내겐 그게 물리학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보다, 이 효과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어. 아니, 뭘 알고 싶다는 것 자체보다 훨씬 중요했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평범한 삶을 갈구했어. 가정과 직장, 남편, 아이들, 월급 통장,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삼시 세끼, 그리고 카오스와 엔트로피가 내 삶에서가 아니라 닫힌 시스템 안에서 유효하다는 확신. 그리고 난 그걸 얻었어.


  심리 추리 스릴러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상황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세밀하다. 그럼에도 속도감이 있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무엇보다 독특하고 독보적인 수잔 캐릭터의 힘, 수잔만큼이나 개성있는 수잔의 가족들의 활약상, 끝날 줄 모르고 무한히 확장되는 이야기의 끝이 궁금하여, 수잔 이펙트의 실패 사례는 혹여 나오나 싶은 궁금증이 책장을 넘기는 힘이기도 하다. 물리학자인 수잔의 시선으로 사건이 전개되기에 여러 요소에 과학적인 해석이 등장한다. 그 또한 독특하고 재밌다. 안 그래도 수잔 이펙트가 인간의 솔직한 심정을 마구 노출하는 것인데 그렇게 마구 분출되는 인간의 감정을 과학적인 이야기로 살짝 정리시켜 주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는 수잔의 네 가족이 인도에서부터 사고 친 데서 시작한다. 인도에서 범죄자가 될 뻔한 네 명 모두가 덴마크 국가 기관의 도움으로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풀려나기 위해 국가 기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딱히 제안이 어려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젊은 인재들의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는 일이다. 이것이 자신을 강간하려 한 배우를 때려눕혀 받은 25년형보다 인도 부족장의 딸과 도망쳐 마피아에게 쫓기는 남편보다, 골동품 밀수혐의로 고소당한 아들보다, 백만 명의 신도를 거느린 승려와 도주 중인 딸의 안전보다 결코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간단히 끝이 날 거란 생각에서, 덴마크로 돌아가고 싶기에 수락한다. 그러나 예상 가능하듯 이 일은 보다 복잡하고 거대한 음모가 가득했다. 당연, 끝없는 목숨의 위협이 있고 연이어 관련된 자들의 죽음이 발생한다.

  국가 기관이 개입한 비밀스런 일은 너무 당연하겠지만 좋은 쪽과 나쁜 쪽이다. 국가라는 권력을 이용한 온갖 악행의 비리를 숨기려고 하거나 국가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으려는 형태가 대부분이라 미래위원회 보고서를 찾는 것은 핵심적인 사항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거들 뿐, 이 이야기가 이끌어가는 방향은 처음부터 짠하고 자신들만의 독특성을 알린 이 네 가족의 여정과 관계였다. 이제 헤어질 가족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으면서도, '태생부터 독불장군에 극도의 개인주의자‘인 네 명은 이 일을 해결하는데 함께 한다. 각자의 의견과 의지를 결코 굽히지 않은 채로 이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각자의 길로 나뉘는 결말로 향해 갈지, 그렇지 않은 길을 택할 지 그 역동성과 내밀한 관계의 변화가 미래위원회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의 이야기보다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에겐 엄마라고 불리기보다 ‘수잔’이라 불리기 원하고 엄마들이 누구의 엄마로 명명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수잔이다. 하지만 수잔 역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눈, 머리카락, 연금, 모든 걸 내놓는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의 어머니와 같이 행동한다. 어쨌든 자신이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반쪽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수잔은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면서도 방황하는데 이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에서 연유한다. 또한 춤추는 것을 더 중요시하며 자신을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수잔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수잔 이펙트를 떠나서도 매력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오랜 시간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 기억이 수잔과 수잔의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하게 만들었다. 또한, 수잔의 남편 역시도 수잔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또한 어린 시절 가족에게서 부모에게서 받은 외로움이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고난을 함께 하고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이 독불장군의 이기적인 네 명은 서로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서로를 이해해 간다.


“그 이야기를 해줄 때 엄마는 우리에게 방을 만들어주려고 한 것 같았어요. 전 그걸 느낌으로 알았어요. 아주 환한 방을, 완벽한 방을 만들어주려고 하는구나. 엄마가 말했잖아요, 물리학은 항상 완벽한 공간을 만들어내려 한다고.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 완벽한 진공상태의 공간, 무중력의 공간, 무균상태의 공간.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해줄 때 전 그걸 가장 분명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엄마는 그렇게 해줬고요. 거의 그렇게 했다고 해야겠죠. 그런데 전 그 방에 들어가기가 싫었어요. 만약 그 방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문제는 바로 그거예요. 정말 아픔이 없는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위험하잖아요. 왜냐면 그냥 거기 있고 싶어질 테니까.”

“엄마, 내 생각에 엄마는 물리 숙제를 고치듯 세상을 수정하려고 했어요.”


  수잔의 딸 티트의 말은 미래위원회가 벌인 일과도 연관되어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어쩌면 미래위원회가 한 일들도 넓게 보면, 게다가 긍정을 끌어들여와 좋게 표현하면, 수잔과 라반이 하랄과 티트 쌍둥이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려는 것과 같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목적과 실행에서의 결정적인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미래위원회가 세기말의 상황에서 추진하려 했던 그들만의 공간이, 위험하다는, 권력자들 역시도 그들만의 권력과 욕망과 권위로 세상을 수정하기 위해 열심히라는, 그 방향이 어떤가를 좀더 생각지 않고 마구 달려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만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수잔이 찾아낸 ‘수잔 이펙트’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그리고 이 효과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게 뭔지 아세요?

타인이에요.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사는 건 바로 타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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