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 추리


분실물이 도착했습니다 - 다섯 개의 미스테리, 오오사키 코즈에, 생각의집, 2017-02-10.



  분실물이 도착했다.

  찾으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우연처럼 제 스스로 도착했다. 전체 다섯의 단편이 있는데 부제가 다섯 개의 미스터리이다. 추리 소설인가 했는데, 다 읽고 나서야 왜 제목이 전혀 잃어버리지 않은 분실물일까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여기, 다섯 개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잃어버린, 제쳐두었던 기억들. 그 기억들이 결국 분실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지난날의 기억은 그때 해결치 못한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가늠케 한다. 오래 전 잃어버린 물건들이 나도 모르는 새 집으로 도착해 내 손에 쥐어진 것처럼 여기 이야기들은 모두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미스테리하다. 분실물은 어떻게, 왜 지금 도착한 것일까.

  미스터리니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날의 일의 파장이 무엇인지, 또 범인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소설들에 관통하는 느낌은 그러한 범인 추적이나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는 것보다 분위기이 듯하다.


저는 ‘살아온 일대기’를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단 하루의, 아니 한 순간일지도 몰라요. 그 정도로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 「들장미 정원으로


  기존 미스터리물에서 볼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이나 서늘한 느낌보다는 정제되고 깔끔한, 담백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공포와 잔인함이 가미된 미스터리가 아니라 아련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단편 속 대사처럼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어떤 일들이 다른 계기로 인해 이야기되면서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알 수 없었던 이야기의 전말을 가늠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해결되지 못한 기억들은 그렇게 잔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 기억에 대한 마무리를 완결을 하고픈게 사람들 마음인 듯하다. 우연찮게 책을  들었는데 첫 번째 단편 「사라의 열매」의 인상이 괜찮아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사라의 열매」는 부동산 중개업자 코히나타 히로시가 업무일로 방문한 집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나 20년 전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시작된다. 결국 자신이 관계된 그날의 이야기, 그러니까 소풍날 히로시는 납치됐고 그 시간 사망한 남자가 있었던 사건. 자연적으로 가정폭력에 대해 나아가는 이 이야기에서, 상처와 죄책감의 흔적이 짙게 묻어난다. 그리고 친구….


원치 않게 사람을 상처 입히고 죄의식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방황을 하던 중 들어가 산소에서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하얀 꽃을 보게 되었어. 그는 그 꽃에 완전히 매료되어 몇 번이나 산에 왕래했고, 그러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꽃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네. 그 열매를 가지고 돌아와 하얀 꽃의 모습에서 자비를 빌며 표식을 새기였지. 자기가 타인에게 입힌 상처. 자기가 자신에게 입힌 상처. 이렇게 가로로 두 줄의 상처를 내고, 그것을 봉인하기 위해 세로로 상처를 내었어. 그리고 일생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고, 숨기겠다고 맹세하지. 그런 이야기였어. -「사라의 열매」


  히로시가 들고 다니는 두 줄의 흠집이 새겨진 노각나무 휴대폰 고리. 사건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꿰맞춰보던 선생님의 숙제처럼 남은 죄책감. 힘들 때 의지할 어른이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이 오래도록 남아 아동학대에 관심을 기울였던 선생님은 히로시에게도 그 죄책감을 덜어버리라고 말한다. 과거의 열매를 버림으로써. 그것은 히로시가 범인임을 단정하고 하는 말인가.


사라쌍수의 꽃이라고 알아? 헤이케모노가타리의 앞부분에 ‘기원정사의 종의 소리, 제행무상의 울림이 있고, 사라쌍수 꽃의 색, 성자필쇠의 이치를 나타낸다’라는 문장이 있잖아. 그 사라쌍수의 꽃 색깔이 하얀 색인데, 이게 그 열매야. 정말이래. 특별한 열매야. 상처가 없으면 꽃이 피지만 말이야. 심지 말고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 너에게 맡길게. 그냥 부적 같은 거야.  - 「사라의 열매」

      

  히로시는 더 이상 무겁고 괴로운 짐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노각나무 열매를 건네지도 않았다. 그 자신도 맡아 놓고 있는 것이었으니. 차 속에서 오래도록 흐느껴 우는 성인의 모습이 참으로 애잔하게 기억되는 사라의 열매다. 사라의 나무는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날 때 근처에 있었다는 나무고 노각나무는 사라의 나무라 불린다고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노각나무 단편의 이야기가 맞물려 이야기의 풍성함을 더한다. 


벚꽃 이야기를 했어. 전화를 든 채로 커다란 벚꽃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하얀 것이 떨어지길래, 꽃잎 인가 하고 봤더니 눈이었다. 정말 예뻐서,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거미줄」


  유달리 다섯 이야기에는 꽃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이 아련한 느낌을 더욱 배가시켜 주고 있는 듯하다. 「거미줄」속의 벚꽃도 이야기의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헤어지는 연인들의 대화 속에 지나간 어느 날의 사소한 일 하나가 어떤 이에겐 중요한 기점이 되는 일로 작용하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어떤 이의 생에 대한, 나의 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인생에 대한 비애를 공감하면서 그러나 헤어짐은 변함없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의 날.


그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 마음 깊이 남았어. 뭐라고 할까? 땀 투성이가 되도록 동네를 뛰다가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릴 때에 문득 하늘을 바라본 느낌? ‘이제 됐어’ 그렇게 중얼거리면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지고, 숨쉬기도 편해지지.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던 버팀목이 뚝하고 부러진 걸지도 몰라‘.’이제 됐다‘는 그 말이 나에게 들려주는 말처럼 느껴졌어. 분명 지쳐있던 걸 거야. 나도, 선배도 너무 많은 일을 무리하게 했어. -「거미줄」


  이제 됐다. 왜 이 느낌을 알 것 같은가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도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숨쉬기 힘들었던 기억들이, 아슬아슬하게 삶을 지탱하던 버팀목을 붙들고 있던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이 대화가 나오기까지의 두 연인들의 희극적인 상황도 블랙코미디같이 여겨졌다. 삶은 참 여러모로, 아니러니다. 참 서정적으로 다가온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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