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개와 늑대의 시간, 김경욱, 문학과지성사, 2016-04-15.


  아주 오래 전에 이 ‘사건’을 접했다. 파리 한 마리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결말이 끔찍스러워 잠자는 이를 깨우는 것에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프랑스 사람들이 해질녘을 표현하는 말이다. 해가 지고 점점 어두워지는 시간, 멀리서 보이는 짐승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라는데, 참 탁월한 표현이다 싶었다. 우리나라엔 아마도 드라마 제목으로 유명해진, 그래서 더 널리 알려진 말로 안다. 이 멋진 표현에 끔찍한 우순경 사건이 겹쳐진다니 안타깝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다시 생각해도 이 사건과는 안 어울리는 말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선 서정과 불안의 기분이 얹어지는데 우순경 사건에서와 같은 공포는 덜 느껴지니까. 선과 악이라는 프레임을 얹으려 해도 쓸데없이 꺼려지는 느낌은 악이라는 단어조차도 부족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둠이 깊어져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서야 나는 그 기이한 감정이 실은 서글픔이었음을 깨달았다. 불빛은 너무나 취약했다. 들에 핀 꽃처럼 무심한 한 줄기 바람에도 목이 꺾일 수 있었다. 어쩌면 불가해한 어떤 악의(惡意)에 의해서도. 30여 년 전 ‘남한’의 벽촌에서 하룻밤새 동네 사람 쉰여섯을 총으로 쏴 죽인 순경은 불 켜진 집만 노렸다고 했다. 빛이 어둠을 불러들인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새까만 지평선에서 외로이 빛나는 불빛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장전된 총을 들고 빛을 찾아가는 하나의 그림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빛과 그림자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림자의 실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두려움 속에 자문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p330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알게 되는데 이것을 보면 왜 제목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했는지 알듯하다. 「동화처럼」을 읽은 후에 「개와 늑대의 시간」을 읽은 터라 「동화처럼」의 동화같은 연애 이야기와 실화 사건 이야기의 간극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한 사람이 하룻밤새 55명을 총기로 난사하는 이 이야기는 그날의 기록이다. 한마을을 휩쓸고 간 총성이 울리기 전부터의 마을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를 사실과 상상을 더해 작가가 재창조하고 있다.

  1982년 4월 26일의 사건 속에서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 성격이자 평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우순경이 있다. 총기난사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범인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었던 경찰이었다는 것이다. 낮잠을 자던 우수경의 가슴에 붙은 파리를 잡겠다고 동거녀가 가슴을 때린 것에서 싸움이 시작되고 이후 무기고를 탈취해 시간 간격을 두어 인근 4개 마을 사람들에게 총과 수류탄을 난사해 사망 56명, 부상 34명을 기록한 것이 이날의 공식적인 사건의 전모다. 우순경은 우체국으로 가 전화교환원부터 살해해 외부와 완전히 통신을 차단하게 하고 전깃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난사했는데, 당시 마을은 집장촌으로 대부분 서로가 친척 관계였다. 우순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가는 기사로는 알 수 없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고 있다. 일상의 삶에 들이닥친 우순경이라는 실루엣에 그날그날의 충실한 하루를 살던 사람들의 생애가 어떻게 소멸되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비극의 난사가 더 가속화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사회에 자리잡은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따라온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보고 체계를 가지고 따지는가 하면 나 혼자만이 살겠다고 숨어 버리는 책임자들, 반공 이데올로기가 꽉 붙들어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항상 끔찍한 사건의 뒷배경으로 자리하는 이 모든 구조는 개개인의 삶에서 필요한 순간마다 얼마나 쉽게 내쳐버리는지를 보여준다.

  사건이 발생한 1982년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2년 후, 당시의 정권은 전두환. 사건 후 민심을 두려워 해 언론 보도 역시 통제했다. 범인 27세의 청년 우순경은 청와대 근무 이력이 있는 자로 청와대에서 좌천되어 의령으로 발령받았다. 이런 좌천에도 우순경의 열등감과 불만이 쌓여 있었는데 이러한 사건이 좌천되기 전에 벌어졌다면 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끔찍하다는 것을 알지만 ‘차라리’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로 늑대의 시간을 만든 것, 늑대를 활개치게 한 것이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그 모든 탐욕과 구조의 한 요소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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