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폭력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최은미·김금희·백수린·최은영·강화길·천희란,
문학동네, 2017-04-07.
책을 덮고 나니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작품은 생각나지 않았다. 올해의 젊은작가상 작품집에서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과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특정 몇몇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고두」에서의 교무실에서 무릎 꿇는 연주의 모습, 「눈으로 만든 사람」의 녹아버린 눈사람, 「그 여름」 수이의 뒷모습, 「호수-다른 사람」의 호수를 어슬렁이는 불안과 공포의 기운이었다. 또한 이번 작품집에선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특징이 아닐까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경은 수이의 그 말이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짐작했다. 수이는 이미 그때 이 연애의 끝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지기 직전의 연애, 겉으로는 누구의 것보다도 견고해 보이던 그 작은 성이 이제 곧 산산조각날 것이라는 예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을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 최은영, 「그 여름」
「그 여름」이 말하는 수이와 이경의 이야기는 이성애에 기준하여 ‘반대’이자 ‘특수한’, ‘비정상’인 동성애라는 ‘다름’을, 인간의 보편적인 만남과 헤어짐의 사랑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있다. 수이와 이경이라는 이름을 바꾼다면 하릴없는, 반복된 연인들의 이야기다. 연인들 자신들에게야 아름답고 슬프고 애잔한 사랑의 기억일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에겐 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어쩌면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사랑이야기가 단지 이름만으로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지, 그렇고 그런 사랑이야기라는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특별하게 기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성애의 시선으로 ‘동성애’를 바라보자면 마냥 다를 것 같은 그들의 연애는 전혀 다르지 않은 이야기이다. 특별할리 없는 보편 인간의 감정을 내세우고 있다. 끊임없이 동성애,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과 혐오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가 있다면 이토록 다르지 않은 인간의 감정에 구분과 차별을 말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느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만든 사람」은 매우 산뜻하고 아름다운 동화의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시작은 그러했으나 역시 세상은 잔혹 동화와 어울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냥 서글펐다. 일상을 잘 흘러가듯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홀로 견디며, 강박적이도록 자신을 다그칠 수밖에 없었던 강윤희의 지난날의 기억. 잔혹동화의 현장을 보는 듯했다. 이 세상엔 수많은 강윤희가 있을 거라는 생각과 그만큼의 강중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교차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잘 살아가는 이 세상의 강중식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을 맞닥뜨려야만 제 잘못에 대한 반성과 후회를, 어쩌면 사과같지 않은 사과를 건넨다. 그들이 행하는 사과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제 불행을 비껴달란 하소연으로 보이는 그런 것.
가만 생각하니 이번 작품집은 전체적으로 세상 속 폭력을 견디어 내는 ‘여성’의 삶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 듯하다. 가족에게든 학교에서든 연인에게든 낯선 존재이기도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도 한 이들로부터 가해지는 폭력들. 세상은 「고두」의 선생이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인간은 충분히 이기적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파노라마 같다. 누가 누가 가장 이기적인가를 실현하며 한없이 폭력적이고 적당히 비윤리적인 세상에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노라 끝없는 항변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산다는 건, 어쩜 이리도 비릿한 건지.
얘야, 내 말 좀 들어보렴.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태생적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다.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 임현, 「고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