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마녀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사카이 준코, 바다출판사, 2016.

 

  편견이 분명 있긴 하다. 일본 작가의 작품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도 아주 맘에 드는 작품도 없다는 것은 자꾸 나도 모르게 ‘일본풍’이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일본풍이 뭔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책을 덮고 나면 역시나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문체나 분위기가 유사한 것 같고 이상하게 밝고 경쾌함, 유머와 위트보다는 퇴폐미를 더 느끼게 된다. 시작이야 열린 자세로 읽지만 수렴되는 결과를 보건대, 나의 편견이 너무 깊숙한 건가. 내 취향에 맞는 책을 못 만난 건가.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제목에서 느낀 위트는 책을 읽어가면서 사라졌다. 심지어는 중년이 처음이 아닌 사람이 어딨어, 라는 회의적인 멘트로 마감을 하고 만다. 중년에 대한 심도있는 성찰, 문제의식, 일본 사회의 관점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딱히 통찰적이지 않은 반복된 수다를 들은 기분이 되었다.

  중년. 우리나라에서는 마흔의 나이라고 해야 하나. 마흔에 관한 흔들림과 반성과 의지와 성찰에 관한 글들이 원체 많으니 비교가 되는데, 그러고 보면 이미 마흔에 관한 사회학적인 통찰과 개인의 경험에 대한 글에 대해선 익숙했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바가 전혀 신선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작가의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40대의 생각들.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중년이라는 자각을 강박적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책으로 그 주제를 다루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열렬한 동조의 반응은 나오지 않는다. 이 냉소적이고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얻자고 내가 책을 읽은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막상 나이가 들면 씁쓸함과 비애가 일상생활마다 마다 묻어나게 되니까, 그런 면에서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읽다 보니 외모에 대한 감정적 반응의 비중이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너무 단순한 패턴으로 읽혀지나 보다. 개인의 방황과 고뇌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할지언정 낯섦을 느낄 터인데 그저 마흔의 나이는 이십대와는 다른 피부, 거죽들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나열하며 아름다움이라는 외모로 인해 우울과 고뇌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자주 피력하니 동조가 잘 안된다. (아니, 이건 난 아직 거죽이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자신감인가…)

  인생 100세 시대는 70세 시대와는 다른 중년이란 나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당연, 공감한다. 하지만 작가가 바라보는 중년기의 모습은 새로운 인식의 변화와는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몇 살이 되어도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인정할 수 없는 중년 여성들이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추함과 불안함. 그것은 90세 인생시대에 중년을 맞이한 버블 세대들이 내뿜는 새로운 분비물이다. 미마녀들은 그런 분비물 따위 본인한테는 없다는 듯 상쾌하게 웃고 있지만, 내 손끝에서는 그 끈적이고 진득한 분비물이 확실히 느껴진다. p15


  이 책은 중년의 경험담인데 중년 중에서도 아줌마라는 자각에 대한 끊임없는 거부가 느껴졌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지만 작가 역시도 ‘난 아줌마와는 달라’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그래, 미혼이라고 하니 ‘아줌마’라고 불리는데 억울함이 있겠지.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도 제3의 성이라 불리는 ‘아줌마’라는 개념과 특성의 명명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그에 반한 “미마녀”라는 명명이 생겨난 것일 게다.

  하긴 작가는 중년기 변화의 핵심을 지속적으로 외모의 변화로 바라보니까 해결책도 그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다. 중년이라는 나이의 외모를 이십대와 비교하며 아줌마임을 거부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고, 그러니까 추함과 불안함이 나온다는 것이 작가의 문제인식이니까. 시든, 노화가 진행되는 몸을 제대로 인식해야만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까지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안정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이 책은 중년에 대한 어떤 통찰과 선언의 글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미마녀”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동정과 질투섞인 조롱같기도 하다.

  어중간한 나이. 그렇게 보이긴 한다. 청춘도 아니고 노년도 아닌 어중간함. 다시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중년이라는 이미지를 한꺼번에 만들어내려는 시도만 없다면 지금의 중년은, 풍요로운 시대에 풍부한 교육과 다양한 취미를 경험한 세대답게 개개인 얼마나 다른 가치와 이미지를 창출하는 존재들인지. 적당히 안정적이고 적당히 건강한 상태로 여전히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나이이기도 한. 그런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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