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지금이 아니면 언제?, 프리모 레비, 김종돈 (옮긴이), 노마드북스, 2010.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 이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로 알려진 프리모 레비는 그 경험들을 여러 저서를 통해 나타낸 바 있다. 그의 책들은 그 시대의 경험과 생각들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했던 작가가 ‘소설’이란 형식으로 이 글을 썼을까.

  프리모 레비의 글쓰기는 직접 경험한 일들에 대한 느낌과 생각, 고통과 슬픔, 비해, 분노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하기에 생생하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나 글은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실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소설은, 허구라는 것이 전제된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이란 형식을 빌린 것은 프리모 레비의 마음 속에 이 경험들이 허구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경험이 가득한 이야기다.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바뀌었을 뿐, 벌어졌던 일들을 기록한 소설이다. 빨치산 유격대원들이 러시아에서 동유럽을 거쳐 밀라노로 도착하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그 기간엔 나치에 대항한 러시아와 폴란드계 유대인들의 유격전을 비롯한 다양한 유격전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제까지의 글들이 경험을 통한 작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기술한 것이라면 여기서는 등장인물만큼의 수많은 상황과 생각과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은 달랐으려나.

  그럼에도 작가가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핵심은 다르지 않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인간의 선악과 폭력성에 관한 줄기찬 물음. 살아 있음을 대한 부끄러움. 이 살아있음에 대한 부끄러움은 늘 그가 전쟁에서도,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았음에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생의 의지를 말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살아있음을, 살아남을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라면 빨치산으로 활동한 이력을 들어 종북좌빨이라 낙인찍었을 작가의 이력. 나치에 대항한 많은 빨치산과 레지스탕스의 모습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많은 탈영병이 있고 길을 잃은 이들이 있다. 살기 위해, 죽이지 않기 위해 그러나 죽이기 위해 빨치산이 되고 레지스탕스가 되려는 이들의 여정은 당연 까마득하다. 굶주림과 공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막연함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떠도는 이들의 삶은 안쓰럽다. 생각보다 전투적이지도 조직적이지도 않은 이들의 방랑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이 책의 제목은 유대인의 애환을 담은 노래에서 따왔다. 유대인 사형수가 처형전에 적은 가사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희망한 것은 바로 노래가사를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래는 이렇게 살아남아 다른 이들에게로 전해졌다.

  2차 세계대전이 유태인 학살임을 알기에 등장하는 유태인의 대화는 여러 모로 자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유태인 풍자극이나 사람을 만나면 유대인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모습이 그 시대를 지배했던 유대인이라는 공포가 유대인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세계 곳곳에 수많은 유대인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유대인의 최종지가 늘 수용소, 죽음이 되는 그 공포에서 그들은 나치에 대항한 여러 활동을 계획하기도 하고 서로가 의지하며 가족이 연인이 부부가 된다. 어깨에 총과 바이올린을 둘러메고 어느 순간 바이올린을 켜는 게달레 빨치산 대장 같은 사람도 있다. 전쟁통에도 공포 속에도 사랑은 있고. 당연 배신도 있고. 일상의 삶 또한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전쟁의 카테고리와 마주한 순간 이야기는 훨씬 더 암흑이 되고 만다. 전쟁이란 이름은 쉽게 동지가 되었다가 쉽게 적이 되기도 한다. 필요라는 이름으로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그 필요와 필연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유대인의 최종지, 나치는 패망했음에도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버리는 유격대의 여정의 끝은 어디가 될까. 암흑에서 시작해서 암흑으로 향해 가는, 그런 암흑을 마주하기에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깊은 내면의 성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인물로 인해 자연적으로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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