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뜨거운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창비, 2009.


  분명 촛불혁명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은 변했다. 민주주의가 실체가 잡히지 않은 채 피로 쟁취해야 하는 이미지에서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수준높은 우아함으로 요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국민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다시 쓴다.

  그래서인지 민주주의의 국민 의사표현 방식으로으써 새롭게 ‘문자’에 대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이는 정치인들은 국민의 문자를 특정 집단의 테러로, 폭탄으로 규정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라 명명했다. 반면 국민들은 정보혁명 시대에 맞춘 새로운 의사표현 수단으로서 문자를 정의하며 당당하게 개인의 번호를 노출한 만큼 문제테러범, 폭탄투하범이라 규정하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

  어쨌든 분노는 좋다. 분노는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되는 힘이다. 다만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민주주의의 발전은 깨어 있는 시민의 폭압적 권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국민들의 대응방식은 변화했고 여전히, 정치인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은 채다.

  100℃는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날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정신의 계승이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평탄할 새가 없었다. 전쟁과 독재가 연이어지고 폭력과 폭압 속에서 짓눌리며 살아야 했다. 경제마저도 피폐한 상황에서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 또한 폭압아래 허물어졌다. 그 피폐한 삶에서도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을 부르짖으며 목숨과 민주화의 가치를 바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리소문없이 스러져갔고 빨갱이란 딱지를 붙이며 시뻘건 피를 빼내는 일이 당연한 듯 권력에 의해 휘둘려지던 그 때. 삶은 삶이 아니었다.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감추고 거짓으로 꾸며댄 이야기만이 권력의 입맛에 맞도록 전해졌다. 그렇기에, 사실과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수많은 이들이 충격과 죄책감을 가졌다. 그리고 여전히 죄지은 자는 죗값을 치르지 않았고 세상은 여전히 독재가 휘두르고 있었으니, 국민들이 분노의 함성을 일으키는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었고 깨어 있는 이들이었고 내 가족과 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렇다. 영호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고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되면서 보이는 가족들의 반응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대학생 영호의 이야기라기보다 영호의 어머니 이야기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가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어머니는 여러 의미로 정말 강하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100℃는 그리고 있다. 아들의 학생운동에 반대하며 빨갱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게 서린 어머니가 진정, 민주화운동에 열성적이게 되는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드는 강력하고 불합리한 억압이 만드는 것이다.

  눈물과 피와 목숨으로 이룬 민주주의가 어이없게도 무너지는, 독재로 회귀하는 현상을 경험한 이들의 분노와 허탈은 얼마나 강했을까. 그럼에도 촛불을 들어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이 꼭, 피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역사가 잘 이어져가기 위해선 또한 피흘렸던 그 시간들을 오롯이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나라에서 자행된 폭압적인 시위 진압방식을 보며 이 나라의 독재적이고 무식한 권력은 정말로 다른 나라에서처럼 국민들이 폭탄 테러를 자행하지 않는 것을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 이제까지의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개인은 희생했지만 타인을 죽이면서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았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야만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 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불을 더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100℃』가 보여주는 세계는 시민의 힘을 보여준다. 1980년, 1987년. 그리고 또한 무수한 나날들. 그리고 처음 촛불을 들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겨울부터의 경험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지나치게 경직되고 엄숙한 분위기가 좀더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가미되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의식으로 점점 변화되고 발전되어 간다. 영원히 ‘완성’ ‘완결’형이 아닌 만큼, 계속 지켜보고 관심을 쏟으며 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이 만화는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