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한 망상
망상,어語, 김솔, 문학동네, 2017.
망상,어(語)를 보고 읽음에도 머릿속에서는 자동으로 망상어(魚)로 전환하고 있다. 망상하는 물고기가 있을 리 없음에도 망상되는 망상이란 물고기. 망상어라는 제목에서 뜻보다 소리에 더 재빠르게 반응한 셈이다. 더구나 이 망상어라 불리는, 아니 생각한 물고기는 글을 읽는 내내 자유자재로 글 속을 뛰놀고 있었다. 망상이란 단어속 그 허황됨을 품고 있음에도 이 글에서 현실이 걷어 올려지는 건 망상이 너무나 잘 뛰노는 탓으로 봐야 하나. 아니, 그보다 작가가 뉴스에서 소재를 건져 올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접해보기 힘든 사건들이긴 하나 엄연히 존재했던 사건으로서의 뉴스들을.
여러 이야기가 짧게 끊어 묶어 엮어져 있다. 36편의 이야기는 서사가 있긴 하지만 짧은 글짓기같은 이야기다. 그래도 세상에, 이런 일도라며 진짠가 가짠가 하며 넘길 이야기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수두룩한 걸 보면 세상은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고 그만큼의 기이한 일도 다반사인 곳이다.
익숙한듯 익숙하기 힘든 이야기들의 출처는 있었던 일이고 작가의 상상력과 더해져 뻗어 나가는데 신문기사로 몇단락 남은 이야기들의 이면이 작가가 그려낸 듯한 모습 그대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런만큼 이 이야기들의 길이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분량만큼, 딱 그만큼이 좋아 보인다. 더 길면 주절주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 뉴스라는 실제와 못믿을 뉴스라는 중간 그 어디쯤의 위치인 이 지점이 딱이다. 마치 아주 재밌는 거짓말같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듯 딱, 그정도로. 맑고 밝은 날 들리는 천둥소리같은 기분도 간간히 느껴지는데 더러 재밌는 문장에 피식 웃음도 나고 만화같은 그림이 더해져 이야기의 재미가 좀 더 망상적으로 흘러간다.
망상, 망상, 망상. 때론 망상은 유머의 끝에 도달하고 때론 경악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망상을 달고 다니는 물고기가 가지 못할 곳은 없어 보인다. 당연하다. 육지라고 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일찍 숨이 끊어지겠지, 뭐. 내친 김에 하늘로…? 뭐, 누군가 집어 던지면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는 거지, 다시 내려오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수용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유한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이 삶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죽음의 권위를 무력화하고 그것을 대체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게 인생이다. 삶의 의지는 탄생으로부터 시작된 파동 에너지가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건너오는 암흑 에너지이다. 에너지의 속도나 방향이 변할 때 사건이 일어난다. 그게 사랑이다. 그렇게 하찮기 때문에 인간에겐 너무 중요하다. 인간의 일생이 하찮지 않다면 우주는 그들을 모두 껴안고 있을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예정보다 서둘러서 자살하고 말 테니까. p171, 연꽃
어쩌면 망상어의 세계는 작가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일 수 있겠다. 어떤 일들은 상상속에선 벌어져도 무방하니까. 뉴스일 때의 그 황망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달래는데도 약간의 망상은 필요하기도 하다. 희망의 뉴스도 불운의 뉴스도 끔찍한 뉴스도 뉴스에서 전하는 삶의 희로애락을 더 잘 느끼려면 말이다. 또한 뉴스에서 알게 된 현실이, 벌어진 사건의 참담함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