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12.6=2016.5.17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이민경, 봄알람, 2016-09-30.


  몇 년 전 찰나 언니가 여성사에 대한 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얼른 여성운동사에 관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필요하다고 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했다. 2014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성운동사에 관한 책은 있는데라는 생각만 했다. 이 책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를 읽고 나서야 그때, 찰나 언니가 말한 맥락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불청객 취급을 받으며 외롭고 공허하게 외치다가 어느 결엔가 묻혀버렸을 내 조상의 목소리를 찾아 헤맨다. 나와 닮은 얼굴을 한 그들이 원했을, 여전히 한탄스럽지만 제법 나아진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후세에게 금세 부정당할 이는 결국 누구인가? p145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여성운동사의 계보를 이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일반적인 위인전과는 다른, 그러나 여성운동에 있어서, 차별받는 여성의 삶의 변화와 전환점을 가져오도록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다. 결과만 기억하고 결과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거나, 알려 하지 않거나, 무심했던 사건에 새로운 기억을 새기는 작업이고 그렇게 잊혀지지 않을 여성들의 이름이 채워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호주제 폐지운동을 시작한 인물, 이태영 변호사. 함께 일한 스승인 유명한 임신 전문 한의사를 찾는 사람들이 전부 아들 낳는 처방만 바라는 것을 보고 남아 선호와 여아 낙태를 비판하며 호주제 폐지제를 위해 애쓴 고은광순 한의사. 강간과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에 씌어진 모멸적이고 부당한 법률을 개정하도록 노력했던 이들과 피해자들. 이들의 지난한 희생과 노력으로 변화를 위한 법률이 제·개정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되지 않는 법률도 있고 그렇기에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또한 있다.

 계보를 살펴보면 느끼듯이 단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나긴 기간 동안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으로 인한 무수한 피해자가 있었다. 그 피해의 터 위에서, 더 이상 피해를 당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순간과 세월들이었다.

  

이번 살인 사건에서 여성이 사망한 것은 우연한 일이지 여성을 일부러 범죄의 타깃으로 삼은 게 아니다. 또한 살인범도 사회구조의 희생자였고 정신병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 일을 정치적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p140 


  위 단락은 작년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논평이다. 그런가? 그렇게 보인다. 당연히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똑같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살인 사건이 벌어진 후 나왔던 말과 너무나 똑같다. 이 말은 1989년에 벌어진 캐나다 몬트리올 총기난사 당시에 나왔다. 캐나다 몬트리올 총기난사 사건은 1989년 12월 6일 캐나다 공과대학에서 여학생들만을 강의실로 몰아넣고 “페미니스트들을 증오 한다” 27명에게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다. 14명의 여성이 사망했다. 여전히 캐나다 시민들은 이 사건이 발생한 날 추모식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건이 벌어진 당시에도 이 사건 이후의 파장은 거셌다. 총기규제 검토뿐만 아니라 여성폭력과 여성혐오에 대한 이슈가 확산되었다. 이때,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 규정하기 꺼리던 이들이 내세운 주장”이 바로 위 단락과 같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강남역 사건이 발생한 후 일단, “절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기에 급급했다. 무엇이 그토록 강남역 사건이 “절대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묻지마 범죄”이고 그저 “정신병자의 실수”라는 주장이 단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공식적인 형태로 규정되어 쾅쾅쾅 도장받듯이, 그러니 끝났다는 듯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개인 단위가 아니라 특정 단체, 정부, 언론 등을 통해 사건의 본질 규정과 이로 인해 벌어진 분위기에 대한 타당하고 명확한 추론과 분석은 차치하고 그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결론”냈으니 더 이상 그 말은 말라는 듯한 분위기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오히려 그러한 분위기로 인해 여성혐오 분위기가 확산되었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그토록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어야 한다는 성마른 논평과 주장들 때문에.

  이처럼 이 책은 비단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에만 주목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주목한다. 그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바로 여성문제에 관한 한 같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성차별에 관해 개혁적이고 차별이 덜하다는 나라들, 그냥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조차도 성평등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개별 사안에 대해 먼저 관련 법개정을 이루거나 먼저 그 상황에 대한 변화를 이루었다 뿐이다. 어떤 부분에 관해서는 진보적이다 싶다가도 다른 사안에 관해서는 여전히 구시대의 관습을 따르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사건’이 벌어진 후에라야 그 일을 다르게, 바르게 볼 시선과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성과 관련한 사건들에 대한 반응은 어찌 이토록 시공간을 초월해 같을까.

  그러한 ‘사건’ 속에 있던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사건’을 통해 잘못된 점에 대해 온갖 모멸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로 잡으려 노력했던 이들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이러한 인물들이 계보가 아직 더 있으리라 본다. 계보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과 전작 <우리에게도 언어가 필요하다>의 아쉬운 점이라면 이야기를 담는 형식에 대한 것이다. 편집이 매끄럽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돋보여주는 그릇의 역할을 생각할 때 교정과 편집에도 신경을 쓴다면 좀더 내용을 충실하게,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들쭉날쭉한 글자크기, 의미없이 느껴지는 문장정렬 등이 사실 지나치게 급하게 인쇄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특히 이런 주제의 책에 대해 일단 반감부터 가지고 보는 독자들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나올 다음의 책들은 조금 더 짜임새 있는 편집형태로 책이 나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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