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경제, 정체성
그저 좋은 사람 Unaccustomed Earth, 줌파 라히리,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2009-09-05.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여러 가지다. 확고한 정체성이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이끈다고 삶의 추진력을 얻는다 하기도 한다.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민족과 국가. 과연 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강도로 영향을 미칠까. 특히 타지에 살고 있는 경우라면 더더욱.
줌파 라히리는 미국에 살고 있는 인도인이다. 그런가? 여기서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은 국적을 이야기하고 인도인이라는 것은 종족을 이야기하는 걸까. 줌파 라히리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곧 미국에서 살았다. 부모에게 인도인의 문화를 몸에 익히며 미국의 사회와 문화를 헤쳐 나가야 했다. 어쨌든 그런 작가의 삶의 궤적이 나타나는 소설에서 이민 세대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한참 느끼다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떻게, 이토록, 미국에 ‘비교적’ 잘 정착하고 있는가,라는.
이 책은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라는 반박의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이민세대와 2세대의 내적인 혼란과 방황이 곳곳에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일상에서 그것을 느끼고 그들 스스로의 생에 대한 질문이 된다. 그런 그들에 대한 질문이 스친다. 그들을 규정해 나가는 그냥, 소설적 질문이라기보다 일반적인 시선의 질문이라고 생각해보면 되겠다. 그들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보지 못한 경우 우리는 물을 수 있다. 한국인에게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그렇게 ‘미국에서’, ‘영국에서’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가.”
인물들은 타국에서 겪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정체성, 일상에서의 고독에 휩싸이고 있다. 특히, 인도인의 문화와 관습을 명확히 지닌 채 미국 생활 정착에 집중하는 부모 세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바탕에서 살아가는 자녀 세대들은 인도와 미국의 관습과 사고, 생활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 사이에서 일상의 행동을 장악하는 것은 인도인의 관습이기에 충돌할 수밖에.
그래서 「머물지 않은 방」의 등장인물이 아밋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상처라고 한다면 랭포드를 보낸 것, 타지에서 생활하게 된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민자들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반응일 것이다.
큰 상처를 겪으면 젊을 때 머리가 셀 수도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누가 갑자기 죽거나 사고를 당한 기억은 없었고, 삶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은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그를 랭포드로 보낸 것 외에는. p115
일상이라 부르는 생활사건들에 대한 소설속 인물들의 감정적인 동요가 눈에 띄는데, 이것이 줌파 라히리 소설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이들 삶의 피폐함은 정서와 정체성에 기반되어 있고 환경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싶기도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삶의 경제적인 어려움, 육체적인 고단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섬세한 감정의 선들이 또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반면 노동자인 이민 세대의 삶의 모습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란 생각이었다. 이들 삶은 내면의 고통 외에 현실적 고통의 강도가 더욱 세게 지배했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할 겨를 없이 여전히 ‘생존’에 더 방점을 두지 않았을까. 이민자이진 않지만, 미국인 메간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다른 삶의 방향을 생각할 겨를 없이 일상을 버티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이민세대로서의 인도인인 이들은 일상이라는 생활사건 속에서 ‘경제적 고민’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인물들이 “먹고 살기 충분하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물론 인도에서 살았다면 충분히 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지금의 삶은 상대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보다는 약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물들 대부분의 삶에서 경제적 힘듦은 삶에 추가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 사회 내에서도 충분히 ‘먹힐’ 직업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여러 면에서 그들은 타지에서도 충분히 뿌리내릴 여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저 좋은 사람>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은 시점에서, 줌파 라히리 소설에 대한 끌림과는 별개로, 왜 이 점에 자꾸 집착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삶의 괴로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라고. 그것은 정체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인간성’을 상실할 파괴력을 지녔다고. 아니다, 편견이 아니라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경제적으로도 피폐해지면 어느 곳에서나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어렵다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둔 이들이 인생의 큰 상처로서 “경계에 있는 나”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아버지가 루마의 일 얘기를 다시 꺼냈다. “일은 중요하다, 루마야. 경제적인 안정도 주지만 정신적인 안정도 있다. 내 평생, 열여섯 살 때부터 난 쭉 일을 해왔다.” p50
아버지의 의도는 다르게 말했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땅」의 아버지가 하는 말을 인용한다. 누군가에게는 경제적인 안정이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데 주요한 일이 된다는 것을.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느끼는 감정적 상실과 혼란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아련한 이야기 속에서도 한편으론 이들 방황이 처절한 고통에서는 한발짝 먼 느낌이 드는 것은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경험하지 못했구나가 느껴졌다. 그렇게 보니 줌파 라히리의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지식인층이다. 충분히 교육받고 충분히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영국으로, 미국으로 가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피폐함을 타개하기 위한 이민과는 또다른 것이다. 이런 경험이라면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선 어떻게 다뤄질까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