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이 필요할 때


쇼펜하우어 문장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훈, 2006.


 쇼펜하우어 하면 염세주의 철학자의 대표라 기억된다. 이 철학자의 문장론은 얼마나 다를까를 생각하며 책을 펼쳤는데, 상당히 간결하고 쉬운 글이었다. 자연적으로 철학자들의 책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부터 갖고 있던 것을 말끔히 씻어주듯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은 사색과 글쓰기, 독서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담고 있는 글이다. 더 정확히는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집 <어록과 보유>에서 사색, 독서, 저술과 문체에 관한 부분만을 역자가 추려 제목을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라 붙인 것이다. 명언처럼 명료한 생각의 전개가 돋보인다.

  쇼펜하우어는 사색하는 인생은 남다르다며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사색이 단순한 신변잡기적 생각의 흐름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나침반과 같고, 사색의 결과에서 얻어지는 것이 사상이라고 말한다. 단, 독서는 타인의 생각을 읽는 것이기에 독서보다 더 한발 나아간 행위가 사색이고 사상가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색을 통해 사상가가 되었다면 사상가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가.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사상가의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위대한 사상가일수록 가능한 순수하고 명확하게, 간결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단순함이야말로 진리의 특징이며, 모든 천재들 또한 단순함을 사랑했다. 앞서 말했듯이 아름다운 문체는 사상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시대를 농락하는 사이비 사상가들처럼 문체를 통해 사상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문체는 사상의 실루엣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졸렬한 문장이 탄생하는 원인은 문체가 졸렬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사상이 졸렬하기 때문이다. p105~106


   글쓰기는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글쓰기는 글쓰는 기법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독서와 생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만 마냥 독서를 통해서 생각의 정리가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문제이긴 하다.

  쇼펜하우어는 사상가의 글쓰기와 문체를 이야기하면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헤겔의 저작물에 대한 비판을 제법 한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헤겔의 글은 ‘졸렬함’의 표본이 되는 모양이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점차 독일어의 문법 체계를 파괴하는 글쓰기 형태가 이뤄지는 것에 상당히 분개한다. 언어의 삭제와 왜곡된 용법이 언어의 의미를 침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독일어의 핵심이랄 수 있는 완료형 시제의 삭제는 모국어를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야만어로 전락시키게 될 거라며 제대로 된 문법의 교육을 강조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이러한 언어의 삭제가 글쓰기의 명료함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오로지 생각의 힘으로 이뤄내야 할 것을 문법의 삭제를 통해 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힘, 즉 수단이야말로 모국어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힘과 수단에 호소할 때 비로소 사상은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으며, 작가의 미묘한 심리형태까지 정밀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아름답고 생기 있는 고전적인 문체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문장을 가리키는 말이다.p133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철학이라 말하는 쇼펜하우어의 사색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흔들림없이 명언처럼, 힘있고 강건했다. 그러나 언어와 문법의 당시의 글쓰기 체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격앙되고 설명적이었다. 구체적인 단어와 문법체계를 들어가며 독일어의 문법 파괴 현상에 대해 지적하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사색과 글쓰기, 문체를 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색과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명확했다. 그렇기에 이 세 주제를 관통하는 작가의 사상 또한 깔끔하고 명쾌했다. 독서도 필요한 일이고 중요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생각을 읽는 일이므로 쉬운 사색의 방법이다. 제 사상을 다듬는 일은 독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좀더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색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색을 통한 글쓰기는 명확한 사색을 통해 제 사상을 잘 정립함으로써 이뤄진다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문장론의 핵심이었다.

  독서가 타인에게 제 생각을 떠넘기는 행위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지금 시점에서 와닿는 것은 사색은 제쳐두고 독서에 매달리는 행위가 지극히 편안한 길만 가려는 방법이란 말 때문이기도 하다. 지극히 그 심정으로 독서에 매달리고 있었다. 독서가 가장 쉬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내게 사색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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