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상하군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저, 유유, 2016.


  이 책의 핵심은 문장을 쓸 때의 주의해야 할 표현이다. 그런데 그런 가르침은 한쪽에 제쳐두고 함인주 씨와의 메일 내용이 더 흥미를 끈다. 함인주라는 작가의 존재를 확인해 볼 정도로 궁금했고, 메일의 내용이 더 끌렸다. 그렇게 난,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란 문구를 들어, 재밌고 기억나게 문장 표현을 다듬는 법을 알려주려는 저자의 핵심 내용보다 부분 내용에 더 집착하는 독자가 되었다. 사실 저자가 짚어 주는 내용들은 낯설지 않은 익숙한 내용이었다. 다만 고쳐지지 않을 뿐. 머릿속에 잘 정리된 교정본이 들어 있다 한들 문장쓰기 습관을 고치긴 쉽지 않다. 좋은 말로 습관이고 내 문장의 특성이라며 감싸고 있을 뿐인. 그래서였을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여전히 문장 다듬기의 실질적인 내용보다 메일 내용과 그들 만남이 더 생각난다. 그리고 애당초 이 글의 핵심 역시도 메일의 내용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실화인지, 허구인지를 생각지 않고 나중에서야 메일 내용은 허구였던가 생각했다. 메일은 교정 작업을 하는 저자에게 교정을 받은 번역가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메일을 보낸 데서 시작한다. 형식적으로 답변하다가 메일의 주인공 함인주의 문장에 관한 질문이 지속되자 저자는 실제 교정작업지를 살펴보며 함인주의 문장을 분석하고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함인주는 카프가의 단편 「유형지에서」를 거론하는데, 끌림의 주된 요인이 이 부분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기계는 실제 비인간적으로 작동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기계가 이루는 세계에는 나머지가 없기 때문이겠죠. 조립을 끝낸 뒤에 볼트나 너트가 남는다면, 또는 부품은 만지 않더라도 빈자리가 남는다면 기계로서 작동할 수 없을 겁니다. 나머지를 갖지 않고 빈자리도 없는 기계는 이처럼 자기 완결적이라 치욕을 알지 못하죠. 치욕이란 스스로를 나머지나 빈자리로 여기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p124


  문장이 이상한지, 표현을 제대로 하도록 도와주는 문장 교열책을 들여다보는 이유 자체도 그것 아닌가. 내 문장을 갖고 싶은 이유, 내 문장이라 부를 글을 잘 쓰고픈 욕구. 그러나 문장의 어색한 표현이라 하며 밑줄 좌악, 빨간 줄 좌악 그어 수정하다 보면 그 문장들은 하나같이 동일한 문장이 되어 한곳에 집합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과장이겠지만 이에 대한 기억이 분명 있다. 학창시절 교편에서 한 원고를 두고도 문장을 교정하는 이에 따라서 수많은 문장으로 교정되어 나타난 기억. 교정자 각각은 자신만의 문장으로, 문장의 어미들을 수정해 놓았다. 그러니, 그것은 결국 함인주의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게 할 요소인 것이다.


언어가 개인의 것일 수 없겠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발화는 개인의 입을 통해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문장 또한 개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나 문장에는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개인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 않더군요. 선생님이 손보고 다듬는 문장은 분명 누군가 개인이 쓴 것이고 따라서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담고 있을진대 선생님이 손보고 다듬은 뒤에도 그 목소리는 그대로 살아 있는 건가요? p118

    

  글을 쓰는 개인이 자신의 문장을 수정하면서 점차로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선 타인이 쓴 말을 써보기도 하고 내 표현을 정확한 문장표현법어 맞추어 재단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타인에게라도 글을 보여줄라치면 쑥스러움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는 메일을 쓸 때조차 상대방이 메일의 오자를, 맞춤법을 확인하는 건 아닌가하는 강박에 시달린다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이 글 속 문구처럼 ‘치욕’을 겪을까 전전긍긍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글쓰기에서 멀어지기도 할 것이고, 글쓰기가 즐거움보다 두려움이 되어 버릴 것이다.

 

기계적이라는 말은 반성과 회의를 모른다는 말이고 따라서 ‘자기’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니까요. 합의의 세계는 바로 이런 기계의 세계일 겁니다. 합의된 내용보다 형식을 그 생명력으로 삼음으로써 참여자들을 나머지로 만드는 세계 말이죠.

 말과 글 또한 합의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라면 ‘나’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늘 치욕을 느껴야 하는 걸까요? 합의된 대로 말하거나 쓰지 않으면 내 생각이나 의도는 물론 느낌조차 표현할 수 없다는 치욕 말입니다. 끊임없이 말하고 쓰면서도 끊임없이 그 말과 글의 세계에서 나머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치욕……. p126~127


  내 문장을 갖는 일. 저자의 말대로 ‘최대한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좋을 일이지만 문장쓰기는 늘, 그렇게 문장표현이라는 굴레에 가려 내용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형식적 두려움, 그러니까 합의된, 기계적 세계를 탈피하는 일조차도 그것을 수없이 겪은 후에야 이뤄질 세계가 될 지 모른다는 것이다. 글이, 문장이, 이상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도 타인의 눈을, 손을 거쳐야만 비로소 인지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이미 인이 박혀 버린 내 표현과 문장들에 ‘치욕’을 찾는 일은 기쁜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양가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 책이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 갖는 관심을 반영한 것일 게다. 그 많은 독자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아쉬운 점은 교정과 교열에 관한 책임에도, 출판사가 그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책의 편집이, 글자체가 깔끔하지가 않다. a4에 쓴 글을 인쇄한 듯한 성의없는 출간으로 느껴졌다. 쓸데없이 페이지를 늘이는 책도 맘에 들진 않지만 최소한의 책의 외면도 생각지 않는 출판도 맘에 들진 않는다. 독자들에게 훨씬 더 읽기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편집이 그렇게도 이상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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