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같은 시와 삶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3월의 꽃샘추위가 시작되었다. 눈이 내린 곳도 있다. 남쪽 지방에선 겨울에도 보지 못한 눈이 삼월에만 연달아 내리던 때도 있었다. 3월은 봄인데, 꽃샘추위라고 부르기엔 괴상한 날씨, 그것은 점점 이상기후라 불렸다.
3월이 봄이란 걸 안다. 그만큼 3월 초엔 꽃샘추위가 있을 것을 안다. 추위는 매섭지만 ‘꽃샘추위’라는 귀여운 말에 가려, 곧 따쓰해질 것을 알아서인지 놀랍거나 불안하거나 하지도 않다. 봄이라는 따스한 기운은 그렇게 마음 속에 스며 새겨지는 모양이다. 이 3월만큼, 봄이라는 느낌은 2월에도 느껴진다. 2월이라는 달력을 보는 순간부터 벌써 봄을 느끼며 상승한 기온과 좀더 따뜻해진 햇살을 느낀다. 그런 2월. 이제는 2월하면 한 작가가 떠오른다. 실비아 플라스. 안타깝게도 이 강렬한 이미지는 2월 11일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의 생애에서 온다. 다른 어떤 말도 작가의 작품 구절도 아닌 작가의 생애에 대한 한 문장. “그날 영국은 100년 만에 가장 혹독한 추위였다.”
이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봄에 느끼는 꽃샘추위의 느낌일 거라고 그날을 생각한다. 2월 11일의 날씨가 실비아 플라스를 삼키고 추위보다 더한 고독와 배신과 우울이 작가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날.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예술가의 비극적 마지막이 강렬하게 박혔지만 작가의 시 또한 강렬한 이미지로 사로잡는다. 실비아 플라스 시전집은 1956년 이후에 쓴 224편의 작품과 1956년 이전에 쓴 시 가운데 50편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실비아에게 괴로움을 안겨준 남편이었던 테드 휴스가 엮은 것이다. 테드 휴스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들은 지운 채 실비아의 작품을 정리했다고 한다.
실비아는 문단에서 페미니스트 시인으로도 불리는데 그것은 실비아의 시가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시대, 여성에게 가해진 이 모순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비평가들이 실비아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시의 언어가 아닌 개인적인 경험(아버지의 죽음과 자살 시도, 남편과의 이혼 같은 것)과 연계하는데 비해 1980년대 페미니즘 문학비평가들은 “플라스의 시에 나타난 분노의 목소리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여성의 격렬한 저항으로 재평가하여, 여성 문학의 ‘신화’ 혹은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부각한다(p657).”
실비아의 시를 읽어 내려가기는 쉽지 않지만 이미지만큼은 강렬하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잿빛 이미지를 심어준다. 시를 읽다보면 반복적으로 뇌리에 남는 단어들, 울분과 결의의 소리들에 명징한 자의식을 찾고자 하는 실비아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쨌든 몇 년을 같이 산 전남편이자 시인인 테드 휴스는 실비아의 시쓰기에 대해 말하길 “내면의 상징과 이미지에 큰 뿌리를 두고 있다” 했다. 실비아의 내면 속에 가득찬 것은 고뇌일까. 어릴 적부터 시를 쓰던 아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내면을 찾아들어갔을까. 외적인 사건들이 실비아의 생애에, 시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분명 아버지와 남편과의 관계들은 영향을 주었겠지만 오로지 그것에 갇혀 있지는 않을 실비아의 시는, 읽고 있다 보면 마음이 힘겨워진다.
내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나는 둘을 죽이는 셈이지.
자기가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일 년 동안 빨아 마신 흡혈귀,
사실을 말하자면, 칠 년 동안.
아빠, 이젠 돌아누워도 돼요.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
그들은 춤추면서 당신을 짓밟지.
그들은 그것이 당신이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지.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 「아빠」 중
실비아 플라스의 대표작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 충격을 안겨준 「아빠」의 구절이다. 2016년 4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김경욱의 「아침의 문」은 실비아 플라스의 이 시를 인용하고 있다. 이 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나치와 유대인으로 설정하며 더 극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삶에 대한, 사물에 대한 시선. 내면의 갈등은 끝이 난 것인가. 오래도록 길들여지고 관념화되어 버린 믿음이 조각나는 것, 감정과 이성을 끝없이 되뇌며 마침내 분노와 울분으로 내뱉는 말. 신화화된 관념을 깨뜨리는 일은 신화를 쌓는 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 삶의 고됨이 고통이 울분에 찬 말로써 해소될 수 있을까. 갈등, 공포, 고뇌, 울분들. 그 모든 것들을 내면속에 넘치도록 담고서 삶을 지탱한 실비아의 자의식은 시대와 실비아를 둘러싼 관계들과 그녀 자신의 관념의 산물이다. 실비아가 지향하는 삶은, 자아는 어디로 향하기를 원했을까.
하얀
고다이바처럼, 나는 벗어버린다.
과거의 유물과 과거의 핍박을.
그리고 이제 나는
바다의 광채 같은 밀밭을 휘젓는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벽에서 녹아내린다.
그러면 나는
화살이고,
새빨간 눈,
아침의 큰 솥 안으로
자살하듯 돌진해서 뛰어드는
이슬이다.
- 「에어리얼」중
실비아의 생이 유동치지 않고 평안하게 머물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인해 못내 울분을 토하고 있을 듯하다. 남겨지게 만들어버린 실비아의 아이들과 더 풀어내지 못한 울분들. 벗어버렸을 그 에어리얼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아니, 절반만 드러낸 채 시인은 떠났다. 시인의 생애도 시인의 언어도 꽃샘추위처럼 서늘하고 매섭다. 또한 그 한기가 청아함을 비장미를 씁쓸함을 준다. 서린 말들이 한없이 이어지는 시어들 속에서 푸욱푹 눈발 속에 빠지듯 실비아 플라스의 시 속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