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상황을 바라는 몸짓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Big Little Lies

 리안 모리아티, 마시멜로, 2015-10-12.


  커져버린 거짓말이라니. 처음부터 이 상황에선 ‘거짓말’ 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소설 속 상황에서 ‘거짓말’은 당연한 공식이 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후의 생각이란 “거짓말”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다. 거짓말을 불러오는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 폭력이란 거짓말을 일으키는 핵심이다.

  리안 모리아티의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세 가지 궁금증에 대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발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가 죽었는가, 누가 죽였는가, 아마벨라를 괴롭힌 아이는 누구인가. 흥미롭고 유쾌한 잡담처럼 풀어놓는 대화와 삶의 이면을 바라보는 내면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살인사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음에도 유쾌하게 읽어나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스토리가 영화나 드라마화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드라마화가 진행 중인 소설이다. 니콜 키드먼과 리즈 워더스푼이 등장하는 미드로, 2월 19일 오늘자 방영이라고 나온다.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맺음은 예비학교에서 이루어진다. 호주의 피리위라는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도시의 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계로 말이다. 이야기의 축을 이끌어가는 마흔살의 재혼녀 매들린, 싱글맘 제인, 미모와 재력 모두 갖춘 셀레스트의 각각의 이야기 또한 흥미있고 그들의 관계 역시도 몰입감을 준다. 성격도 나이도 다른 세 명의 여자가 친분과 유대를 쌓아가며 또다른 학부모 그룹과 가지는 갈등이 이 사건의 전면에 나온다. 아이를 둘러싼 파워게임, 아이도 어른도 외모와 재력과 권력의 힘을 자랑하고파 하고 그것을 부러워하고 힘을 가진 이에게 더 친분을 형성하고파 하는 익히 알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이 전개된다. 그 과정의 이야기가 유머스럽게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라면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상황, 이혼한 부부가 한 학교의 학부모로 만나 벌어지는 일이 얽혀져 있다.

  아이의 세계나 어른의 세계에나 평행하게 전개되는 거짓말. 우린 타인의 말에 대해 자의적으로 의심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타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타인의 삶이, 말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그것은 식탁 위에,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거짓말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거짓말은 늘 다른 것을 감추기 위해 하게 된다.

  폭력은 늘 거짓말을 끌어들인다. 학대받는 아동들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교사의 ‘폭력’을 알리지 못하는 것은 폭력을 경험한 공포 때문이다. 폭력을 당한 여성이 폭력의 가해자인 남편을 고소하지 못하는 것 역시 공포다. 또한, 오랫동안 이 사회는 가정폭력의 일상성을, 문제없음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또한 폭력 후에 일어나는 “잘 될거야”와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자기암시적 거짓말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러니 친구의 폭력을 참고 그 가해자를 발설하지 못하는 아이나 폭력의 일상화된 모습을 목격하며 저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 자신이 폭력당하고 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셀레스트, 어릴 적부터 당한 학대와 폭력으로 인해, 또는 어쩌다 당한 한번의 폭력으로 인해 그 공포와 분노가 성인이 되어서도 내재화되어 떨치지 못하는 인물들 모두, 폭력의 피해자는 얼마나 같은 모습인가.

  아이를 둘러싼 엄마들의 갈등관계는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오히려 풀어진다. 진실의 순간은 오해가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진실 앞에서 서로의 유대가 강화된다. 오해로 인해 반목했음에 대한 사과가 이뤄지고 피치 못하게 면면의 거짓말을 해야 했던 이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이루어진다. 엄청난 사건 앞에서야 또다른 엄청난 사건은 드러나는 아이러니. 폭력의 희생자 셀레스트는 말한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폭력을 말하는 것일까. 폭력을 감추는 거짓말에 관한 것일까. 그냥, 그런 거짓말에 관한 것일까. 헬리곱터 엄마들의 종횡무진 난리부르스를 다룰 것 같은 이야기의 시작에서  사회에 넘쳐나는 폭력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아이와 어른의 동일한 행동을 나타낸다. 폭력을 행한 당사자로 지목되면서도 친구의 거짓말을 묵묵히 감내해내는 아이, 시끌벅적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살인자가 되어 버린 이를 감싸는 진실을 알고 있는 어른들. 사람들은 그것이 물리적이든 언어적이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가슴에 맺히는 폭력을 행사하고 또한 그에 맞서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을 동원한다. 이 맞물려가는 일련의 일들은, 그 사소한 거짓말 속엔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위한 몸부림이 숨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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