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를 느끼지 못했다

 

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16-09-23.

 

 

  실존 인물을 그린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객관적이어야지 하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될 때가 많다. 그래서 실제 인물의 생애를 다시 살펴보고 다른 이들의 평가를 보며 다시 인물에 대한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곤 했다. 그런데 마타 하리. 1차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총살당한 무희인 그녀의 생애를 소설 스파이로 만났다.

  유명인물이지만 그녀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생각보다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우선 작가가 파울로 코엘류였기에 만족감이 덜했다는 점도 있다. 파울로의 글이라기엔 내용이나 문체가 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더 나아가 작가가 의도한 바대로의 마타 하리의 이미지, 작가가 그려낸 마타 하리의 생애에 대해 오히려 의문이 가득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마타 하리에 대해 감정이입을 해야 하고 작가의 의도를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가 한동안 계속 생각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마타 하리에 대한 검색을 여러 번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작가가 그려낸 것만큼이나 마타 하리의 실제 행적 자체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총3부로 구성된 1부는 마타 하리의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을 그린다. 네델란드 장교와 결혼하여 동인도에서 생활하지만 남편의 폭력과 외도에 고통스런 삶을 보내던 중 고대 인도의 전통 무용을 보며 충격과 환희를 경험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마타 하리란 이름으로 파리로 떠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의 결혼은 사랑과 애정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남편의 ‘구혼광고’를 본 그녀가 ‘지원’하면서 이뤄진 결합이었다.

  2부에서는 마타 하리가 인도에서 본 춤을 재현하며 파리에서 무용가로 명성을 얻는 과정을 그린다. 마타 하리의 이국적인 외모와 나체로 추는 관능적인 춤은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게 되며 인기를 얻는다. 유명 극장에서 공연할 기회를 가지며 고위 관료들과 어울리고 프랑스 사교계를 누비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네델란드 여권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그녀는 독일 정보부의 2만 프랑의 스파이 제안을 받았고 프랑스를 위해 일하고 있던 중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다.

  3부는 마타 하리의 변호사 클뤼네가 마타 하리의 처형 전 쓴 편지로 마타 하리가 고위층과 관계를 어떻게 쌓아나갔는지, 어떻게 이중 스파이로 의심받게 되었는지, 명확한 증거 없이 처형을 당하게 되는 모습에 대해 쓴다.

  이렇듯 총3부이지만 전체적인 분량이 많지 않다. 또한 마타 하리의 편지나 변호사의 편지 형태로 이야기가 정리된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의 내밀한 심리를 보여주기보다 사건 요약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독자가 마타 하리의 억울한 면이나 생애,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느끼며 ‘판단’할 새 없이 ‘마타 하리’는 이렇다라고 정해진 서술이었다. 어쨌든 그렇기에 마타 하 리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느낌도 갖지 못했고 열렬한 페미니스트의 느낌도 갖지 못했다. 마타 하리의 삶에서 춤에 대한 열정도 느끼지 못했고 이중 스파이로서의 역할에 대한 것도 너무나 부족하게 서술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부분은 실제 그녀의 이중 스파이 활동이 미미했다고 얘기된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1차 세계대전의 상황에서 불행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탓이리라.

  작가는 마타 하리를 “시대를 앞서간 여성, 페미니스트”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불성실한 독자였는지 작가의 의도대로 못 느끼는 것을 떠나서 오히려 마타 하리에 대해 ‘무지’한 모습만을 읽었다. 그녀가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서 희생된 것이 아니라 무지했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그녀가 쓴 편지로 시작한다. 처형당할 때도 당당한 마타 하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마타 하리의 시선에서 써내려간 삶의 모습은 당당한 여인보다 ‘무지하고 무지한’ 느낌만이 거듭 느껴졌는데 심지어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하며 아이에게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서술할 때, 반복적으로 자신을 빼내어줄 고위 관료 및 유명인이 많다고 거듭 서술할 때는 이 느낌이 극도에 달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p29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라는 말은 공감하도록 하겠다. 모든 여성은 어느 때일지라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겠지만. 실제 마타 하리가 처형당할 때 당당하게 걸어갔다고 하니 마타 하리의 주장대로 그녀는 용기 있게 나아가긴 했다. 당당하고 자유로운 삶, 독립적인 삶이란 그녀 스스로 주장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에서 볼 수 있는 간략하게 전한 마타 하리의 삶의 모습에서 더 보여주지 못했다고 여겨졌다. ’독일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인 척하며 실은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기게 만들고 있었지요‘ 그녀의 주장을 느낄 만큼의 묘사가 없다는 것. 그저 그녀가 ’나는 이랬다‘라고 말로만 나타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대로 마타 하리를 보기엔 그러한 심리를 느낄 만한 묘사와 서술이 부족하다. 마타 하리의 삶이나 그녀의 춤, 이중 스파이라는 것에서 갖는 강렬함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극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오로지 마타 하리의 입을 통해 덤덤히 전개된 까닭에 강한 감정이입이 덜 되는 것인가도 생각해 보지만. 간결하게 펼쳐지는 상황 설명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오히려 더 큰 듯하다.


나는 행복을 찾았던 게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라 브레 비La vraie vie’, 진정한 삶을 원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상심의 순간들이 함께 있고, 충성과 배신, 두려움과 평화의 순간들이 공존하는 진정한 삶. 내가 미행당하고 있다고 거지가 말했을 때, 나는 이전에 맡았던 그 어떤 역할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나 자신을 상상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독일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인 척하며 실은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기게 만들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신이 수학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신이 만일 사람이라면, 신은 상대방의 수를 앞질러 생각하고, 미리 무너뜨릴 전략을 준비하는 체스 선수일 것입니다. p157

 

  마타 하리가 원했던, 그렇게 살았다고 하는 ‘진정한 삶’. 그것을 느끼기에 소원했던 스파이는 그래서인지 마타 하리의 실제적 삶에 대해 궁금하게끔 하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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