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1
말런 제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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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할 쉣스템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레게와 육상과 봅슬레이로 기억되고 있는 나라, 자메이카. 이곳 출생 작가 말런 제임스의 소설이다. 말런 제임스는 그의 첫 작품을 출간하기까지 출판사로부터 78번의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적어도 한 곳 출판사에만 집중하지 않았을 것이니 70여 곳의 출판사를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은 작가의 노력과 인내가 놀라웁다. 그런 힘을 가진 작가였기 때문일까. 세 번째 소설 <일골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는 작가에게 맨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이고 수상작이자 소설 형식에 대한 거듭된 찬사를 받고 있다.

  문장이 완결되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많은 욕설과 비속어를 모두 걷어낸다면 1,176페이지의 분량이 절반으로 줄었을 소설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랬다면 소설의 묘미도 절반으로 줄었을 거라는 점이다. 사전 정보없이 소설을 읽어나갔기에 소설에 대한 흥미는 이 사건이 ‘현실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배가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겪은, 겪고 있는 상황과 자메이카의 현실에 깊이 이입하며 1976년의 시간을, 밥 말리라는 가수를, 혼란에 끼인 자메이카를 그려나가게 된다.

  실존 가수 밥 말리에게 실제 일어난, 자메이카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의 소제목은 레게 가수의 곡과 앨범에서 따왔다. 총5부로 구성된 이야기가 방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13명의 화자가 등장하여 쉴새없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떠들기 때문이다. 마치 구전처럼 이야기는 이야기를 파생한다. 이 사건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간이 흘러도 또는 이미 생을 다하였어도 그들은 잊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역사는 또다시 강대국의 이익에 휩쓸리는 한 나라를 보여준다. 그리고 권력욕에 희생되는 나라와 사람들의 모습을, 모든 욕망을 끌어모아 타인을 지배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자메이카는 대한민국이 그랬듯이 식민의 잔재와 빈부 격차와 인종갈등이 넘치고 있었다. 그에 더해 1976년의 자메이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하고 있었다. 정치권은 갱단과 연결되어 암살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었고 미국을 피해갈 수 없었던 냉전시대, 미국은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 자본주의를 내세운 노동당을 지원한다. 공작정치, 그것을 지원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렇다고 하자.

 

2주 후면 총선이다. CIA가 이 도시에 쭈그리고 앉아 그 투실투실한 엉덩이로 냉전 시대의 땀자국을 남기고 있다. 잡지사에서는 나한테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는다. 뭔지는 몰라도 롤링 돌대가리들이 녹음은 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나 한 문단 써오라는 것뿐. 헤드폰을 반쯤 걸친 믹이나 키프를 중앙에 배치하고, 배경 어딘가에 색감을 살려줄 자메이카인을 끼워넣은 멍청한 사진이 담긴 완성본으로 말이다. 그딴 건 씨발 좆이나 까라지. 마크 랜싱이 벌이고 있는 건 대체 무슨 게임일까? p132

 

  자메이카 국민에게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콘서트를 여는 가수 밥 말 리가 콘서트 전 살해당할 뻔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갱단이 연루된 이 암살 기도 사건의 든든한 조력자는, 기획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 과정에 연관된 사람들은 말단 갱단원에서부터 CIA 직원까지 다양하다. 노동당과 인민국가당 각각의 갱단들, 갱단원이 된 소년들, 사람들.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의 시선은 덤덤히, 격렬하게 이 이야기를 전한다. 이 사건을 겪고 본 자메이카 사람 어느 누구라도 트라우마를 겪으며 삶을 견디어 가는 모습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모든 돈과 권력의 이해관계의 속살들을 보며 그것이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전진하고 있음은 보는 내내 답답함을 안겨준다. 역사는, 이토록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민중들을 괴롭히며 파탄으로 몰고 간다.

레게 음악의 흥겨운 리듬 뒤편으로 마약이 총질이 끊이지 않는 자메이카를 떠올린다. 봅슬레이를 타며 웃는 자메이카 선수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삶의 비애 속에 놓인 작은 섬 나라의 뒷골목이 떠오르는데 자메이카는 지금도 그런 모습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어떤 한 사건이 오래전에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말끔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대한민국이 그런 것처럼 그런 역사의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혼란스러움은 잔재할 것이고 아픈 역사를 겪은 이들의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암살 사건을 목격한 니나 버지스다. 많은 화자가 등장하는 가운데 홀로 여성인 니나의 삶도 직접적인 살인에 가담하고 마약에 빠지는 갱단원 이야기 못지않게 파란만장하고 애잔하다. 자메이카와 미국을 오가며 겪는 그녀의 삶은 인종과 여성의 차별을 버티어 나가고 있다.

  밥 말리는 여전한 평화운동을 위해 애를 썼지만 암살 기도 사건 5년 후에 암으로 사망한다. 밥 말리는 사망하기 전 평화콘서트를 한번 더 개최했지만 자메이카에 평화란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취득하기 위한 개인과 집단에게 ‘평화’에서 얻는 이익이란 게 없다는 점이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니 이 소설의 모든 말들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쉬고 욕으로 끝맺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이 자메이카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끝없는 욕설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임산부도 어린 아이도 주저하지 않고 살해하는 잔혹한 폭력과 성에 대한 탐닉, 그리고 성적 폭력. 폭력이 난무하는 자메이카는 자메이카를 이끈다는 지도자들이 만들어 가는 작품이다.

 

나는 정치를 증오한다. 이 동네에 살자면, 정치의 틈바구니를 살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정치의 틈바구니를 살아내지 않으면, 정치가 나를 통해 살게 된다. 1권. p69

 

  그러니 정말 피똥 쌀만하다. 거룩하고 대단한 정치를 보고 있는 기분이 말이다. 그래서 자메이카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쉣스템SHIT+SYSTEM’이라고. 부패한 정치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 부패하고 난장판인 시스템들. 세상 어느 누구도 체제에 시스템에 영향받지 않을 사람은 없다.

  피똥 쌀! 피똥 싸게! 등장인물마다 입에 달고 있는 이 말이 웃프게 들리는 건 여전히 괴상망측하게 정치를 이해하고 정치를 행하려는 이들 때문이다. 정치는 인간의 삶을 보다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지 특정한 이의 환희에 찬 삶의 송가가 아니다.

  변화에 대한 기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걸까.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건가. 평화콘서트도 막을 내리고 레게 음악이 구슬프게 여겨진다. 지금 자메이카는 그때와 같지 않은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젠장할 쉣스템. 젠장할 인간들. 정치인들에 의한 살인의 역사는 오래도록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언제나 평범한 ‘나’ ‘너’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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