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스파이다

 

고요한 밤의 눈, 박주영. 다산책방. 2016.

 

   스파이 소설이라 이름하는 이 소설에서 스파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는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들이 행하는 첩보 활동도 없다. 등장인물들 스스로가 ‘스파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그래서 ‘스파이의 정체는 뭔가?’라는 의문만으로도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처음부터 누군가가 스파이임을 알린다. 그리고 세상에 살아있는 존재로 기록되지 않은 쌍둥이 중 한명이 기록되어 살고 있는 언니의 실종을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미스터리와 첩보로 가득하리라 생각했던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스파이 활동과 관련한 스토리가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각자의 사색이 주가 된다.

   사회 현실에 대한 상당히 익숙한 비판이 줄곧 등장인물에 의해 제기되는데 이러한 철학적이고도 비판적인 사회고발의 내용을 익숙하지 않게 잘 버무린 듯하다. 끝까지 내용에 관한 모호함을 유지하면서도 ‘이 사회가 이렇다’라고 분개하게 되는 내용을 사회학 책처럼 잘 정리하여 제시한다. 등장인물의 몇 이야기를 빼고 나면 자본주의 현실, 경쟁사회의 현실, 조직사회에 대한 것,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직시하는 말들이 줄줄이 열거된다. 이것이 소설의 형태로 제시되면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등장인물은 미지칭으로 알파벳으로 각 개인의 관점에서 사건이 서술된다. 또한 등장인물 자체가 많지 않다. 이들 몇 안되는 인물들은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스파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스파이라는 역할과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하고 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선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스파이들이 존재하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스파이로 만드는가. 어쩌면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을 스파이로 만드는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도. 스파이는 사람들을 감시한다. 적어도 등장인물 몇은 그렇게 타인을 감시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위험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감시하는 일이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니까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X는 X의 일을 하고 Y는 Y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스파이이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하나이거나 하나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 그 세상의 이면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이면에 또 누군가가 있다. 누군가 우리를 모른 체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등 뒤를 모른 체한다.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지만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우리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p134

 

   자기 일에 직업으로서 최선의 역할을 다하면서 그것 자체로 교묘하게 스파이일을 수행하기도 하는 이들은 왜 스파이가 되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 길 없다. 그저 그렇게 막연하게 그들은 스파이가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스파이라는 삶이 가져다 줄 그들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지조차 모호하다. 그런 만큼 그들 각자의 스파이라는 삶에 대해 가지는 끊임없는 회의가 없다면 이 소설은 없을 지도 모르겠다. 마냥 모호한 스파이라는 존재, 그 역할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작가가 말하는 ‘스파이’는 그냥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들인 것만 같아 보인다. 특정한 시스템에 그저 흘러가는. 생각을 잃어버린 채 그렇게 흘러가는. 그러니까 결국 권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자들이 될 수 있겠다.

   어느 사회나 사회가 안정적으로 흘러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안정’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특정한 사회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희생되는 사회가 오래도록 흘러가고 있었고 그러한 사회의 변화를, 혁명을 인식한 자들에 의해 기존의 틀들이 조금씩 수정되며 사회가 흘러갔다. 그 과정 속엔 늘 힘과 권력이 있는 이들이 세상을 휘둘렀고 그들에 의해 나아갈 방향을 되돌려야 했던 수많은 이들이 있다. 마치 특정한 권력이 살아가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것처럼 그들의 필요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이 사회에 가장 위험이 되는 것은 ‘사색하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 나 하나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 이 소설은 결국 이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문제와 모순들을 외면한 채 그대로 굳어진 사회로 흘러가는데 일조하고 있는 각 개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위안을 주는 환상 속에서 살 수 있다. 거짓된 현실에 속아주기도 하고 본래 의도를 감추려고 그 현실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이 거짓으로 쌓은 도미노가 길고 크고 복잡해질수록 어쩌면 우리는 더더욱 환상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적인 환상을 지키기 위해 거짓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스파이의 삶이다. p164

 

   지금과 같은 경쟁사회, 누군가에 의해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이 스파이들의 모습이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각 개인의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헬조선이라는 사람이 인간다운 삶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타인을 ‘이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 우리 모두가 직접적인 지령을 받지 않은 채로 특정한 이들이 원하는 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해 자신과 같은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을 견제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 모두가 스파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지배하기 더 쉬워졌다. 가난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며 그저 그렇게 살다 죽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니며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졌다. 원망해야 하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뿐이다. 그래서 자살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자꾸 일어나면 세계가 흔들린다. 먹이사슬의 바닥을 장식하는 인간들이 사라지는 것이니까. 최소한의 삶의 조건마저 고려하지 않은 생지옥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세계는 굳게 유지되리라고 믿는 근거가 나는 정말 궁금하다. p211

 

   소설 속에서 작가가 외치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지금 현재의 사회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느껴왔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오래도록 패배주로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변화의 기점을 맞이하는 순간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목적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무기력에서 벗어날 발판이 이루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때야말로 정말 ‘스파이’가 될 것이다. 시스템의 스파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주인으로서의 감시자, 스파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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