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 풍경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유주환, 문학과지성사, 2014.
한 해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 스펙트럼을 경험하지만 2016년 한 해에 끝자락에 걸린 최고의 단어는 ‘자괴감’일 것이다. 그 자괴감을 아래로 내리고 오래도록 한국사회가 한국인에게 안겨준 감정은 모멸감이다. 자괴감마저도 모멸감 후에 오는 감정일 테니까. 모멸이 만연된 한국사회에서 이 책이 가져다 준 성과라면, 거듭된 모멸의 현장을 맞닥뜨리는 거랄까. 모멸은 모멸감을 낳는다. 거침없는 모멸의 현장은, 오래도록 한국사회가 그것을 당연시해왔다는 것을 반증한다. 저자는 감정이란 일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라 말한다. 그래서, 모멸감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모멸받지 않는 생을 위한 사회문화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저자는 “감정의 행복을 도모하는 문화”를 구상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저자는 모멸감의 기본적 속성과 그 감정의 뿌리인 수치에 대해 먼저 살펴보는데 수치심이 사회통합과 자아파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욕이 바로 이 수치심의 촉발제이다. 이 모욕이 삶과 인간관계를 왜곡하고 폭력하고 있는 사례에 대해 저자는 무수히 보여준다.
이 모멸 만연 사회에 대해 누구나 같은 진단을 내릴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쟁구조. 불균형 시스템, 경제성장을 강조하지만 분배정의는 나 몰라라 하는 사회. 학력은 높지만 지성은 쇠퇴하는, 혹독한 경쟁에서 치러야 하는 사회적 부작용과 개인적 피로감이 그 원인이리라. 저자는 말한다. 사소한 차이들에 집착하면서 경쟁에 민감한 한국인은 그렇기에 모멸을 일상화한다. 단지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도 모멸감을 준다. 열등한 집단에 대한 범주화, 비인격적 관료제도 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문자해고통보, 갑을관계 등등 모욕할 거리에 대해서 너무도 쉽게 찾아낸다. 무엇마다 ‘충’을 붙이며 비하하는 것에서도 그렇다.
저자는 이것이 시민사회와 인권의식의 미성숙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너무도 ‘경제성장’ 위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늘 경제성장을 외치고 기치로 내걸지만, 언제 경제가 정말로 성장한 적이 있던가. 그러면서 늘 인권과 시민사회 문화의 성장에 대해 외면한다. 어쨌든 저자는, 우리 사회는 모욕의 실체를 규명하고 모멸감을 성찰하는 언어가 빈곤하다고 말한다.
수치심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서 유발되는 감정이라면, 모욕감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따라서 수치심에는 죄책감이나 미안함이 섞일 수도 있지만, 모욕감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욕감을 유발한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서 분노나 원한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p64
언어가 생각과 문화를 담아낸다고 할 때 한국 사회에선 무형의 폭력에 대해 둔감하다. 한국인은 타인을 모욕하는 말을 쉽게 내뱉고 또한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과민하다. 과시적이며 인정 욕구 또한 강하다. 심지어 악플 반응에서 기꺼이 즐거움을 느끼려 한다. 갈수록 만면해지는 개인주의와 인종주의 또한 모멸을 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모멸은 사람을 비하하는 것,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 조롱과 멸시와 차별과 오해와 동정의 시선속에서 살인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존중해야 한다고 당연히 말하고 중요성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하여, 행복한 감정을 영위하고 살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자존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다. 품위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할 때, 목숨을 걸고 보복하거나 그것을 회복하려고 몸부림친다. 아니면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 상태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났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는 사회를 가리켜,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정확한 정의를 내리자면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이유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 또는 그럴 만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다. p210
자존감이 향상될 수 있기 위해서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모욕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담론을 만들고 사람들의 성찰을 이끌어낸 운동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습관화된 문화에 대한 제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인간의 자존감이 정체성이 사회적 지위와 동급으로 삼는다면 자존심이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회복 탄력성이 강한 긍정적 자아존중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의 행복감을 우월감과 동일시하는 것도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마치 행복강박관념자인 듯 행복에 집착하고 살지만 그것을 잘 들여다보면 타인과 비교한 우월감을 행복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불행의 원천이 된다는 것일 인식해야 한다.
모멸감을 줄이려면 이러한 문화와 사회 풍토를 바꿔가야 한다. 가치의 다원화가 핵심이다.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여러 차원으로 틔워야 한다. 그럼으로써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평범함과 비범함을 나누는 기준 자체를 상대화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간이라면 모두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바탕과 존엄함에 눈을 떠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저마다 지니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이 개발되고 꽃피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승인해주면서 도전과 성취를 북돋아주는 관계와 공동체가 다양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p305~306
결국 개인의 노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 하나의 변화로 행복해줄 수 있기도 하다. 자신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좋다 그래 좋다. 그러나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토대속에서 이 행복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더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간다. 사회의 변화가 개인의 보다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모든 것은 사회다. 그 사회를 만든 것도 개개인의 사람이다. 다시 이 상호관계의 작용을 생각하며 ‘나 혼자’ 만의 변화가 아니라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