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희랍.로마의 분노론 (반양장) - 분노하는 인간, 호모 이라쿤두스 연구
손병석 지음 / 바다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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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모 이라둔쿠스에게 박수를


고대 희랍·로마의 분노론 : 분노하는 인간, 호모 이라쿤두스(Homo Iracundus) 연구


정의로운 분노가 부정되는 사회는 고대 희랍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유인인 아닌 노예들의 사회다. p542


  오래도록, 이러한 상태에 놓인 사회에 살고 있다. 차라리 신화속 야만의 사회가 질서있고 더 정의롭게 느껴질 만큼이다. 분노란 정의롭지 못함에서 기인하다는 생각을 갖기에 분노의 긍정성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그러나 사회는, 아니 정확히 권력은 체제에, 권력에 반한 분노를 평가절하하며 위험 요소로 ‘처리’한다. 그렇다. 권력에 의해 분노는 늘 처리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분노하는 인간, 호모 이라쿤두스(Homo Iracundus)여 일어나라!

  

  『고대 희랍·로마의 분노론』은 제목 그대로 고대 희랍과 로마의 철학자들에게서, 신화에서 배우는 분노에 대한 연구다. 왜 수많은 인간 감정 중에서 분노를 끌어왔는가. 그것은 분노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통로이다. 물론 분노의 결과가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부당함에 대한 영혼의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부정의만 만연된다”는 점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분노가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다면 그것은 자연적 분노로 보기는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분노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바가 저자와 같을 것이다. 통제를 벗어난 개인적 분노가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필수적인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그러한 점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 책에서 이 자연스러운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서 고대의 철학자들의 책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가 선택한 텍스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속 영웅,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와 에뤼뉘에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 학파에 관한 내용을 텍스트로 정한다. 이들 텍스트를 통해 분노가 무엇인지, 분노의 통제와 제거는 가능한지를 탐구한다.

  사회·정치적으로 ‘분노’의 발현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을 들었지만 이것 외에 텍스트를 통해 신들과 영웅들의 ‘분노’를 보는 것도 충분한 재미가 있다. 가령 전쟁 중의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측면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전리품인 브리세우스를 빼앗기고 분노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그 일에 대한 분노로 더 큰 문제를 초래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현재의 눈으로 보건대 쪼잔한, 미친 x 소리가 나오게 하지만) 영웅시대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명예 박탈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그것이 비록 공동체 전체의 비극을 야기하게 되었긴 하지만 당시의 사회에서는 적합한 감정의 표출이라고 말한다.   

  잦은 분노를 하는 복수의 여신들의 분노에 대한 해석, 그리스 신화에서 악녀로 평가받는 메데이아의 복수에 대한 해석 또한 흥미있다. 최근의 신화해석이나 인문학 책들에서 메데이아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보는 것이 제법 있긴 하다. 이 책에서도 메데이아의 분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메데이아의 분노는 여성에게 남성과의 결혼은 불평등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여성의 불평등과 부자유에 대한 항변을 대변한다. 여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처럼 일생에 걸쳐 가정에서만 활동이 이루어진다. …메데이아는 여성의 목소리가 공적 영역에서는 침묵당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온전한 의미의 자율적이며 평등한 존재가 아님을 항변하는 상징적 인물인 것이다. p374


  이 책에선 사회·정치적 맥락에서의 분노와 개인적 차원의 분노의 결과에 주목하면서 공적인 영역에서의 분노의 긍정적 기능이 있음을 명확히 한다. 또한 감정이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특히 분노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이러한 평가는 주로 세네카 학파의 주장이었다) 바로잡고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 즉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으로 분노에 대해 다루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분노는 잠들어 있는 공동체를 깨울 수 있는 계몽된 영혼의 외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회가 보다 더 나은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의 분노에 눈을 감거나 눈을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한 분노에 눈을 감는 사회는 곧 그 사회의 불의와 부정 그리고 도덕적 타락을 용인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분노해야 될 때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p542


  지속적인 촛불혁명에서 나타난 바는 국민들은 분노해야 될 때 분노했다. 최대한 정의로운 분노를 구가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다시 드러난 바는 국민들은 바르게 분노할 줄 아는데 ‘권력자’들은 이 분노를 이해하는 방식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답습해온 그대로의 사고로만 ‘분노를 바라보고 처리한다’.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끌어들이고 역시나 평가절하하며 ‘부정의한 분노’라는 ‘특정인의 분노’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러니까 결국 분노에 대해 배워야 할 이들은 일반 국민들이 아닌 것이다.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의 분노의 의미에 대해 배우고 깨달아야 할 사람은 언제나 ‘권력을 쥔 자“의 몫이다. 그 권력을 국민이 주었다는 사실을 언제나 선거 기간에만 인식하는 이들에게 ’정치공학‘이 아니라 ’분노론‘에 대해 학습할 의무를 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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