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항해 - 감정 이론, 감정사史, 프랑스혁명
월리엄 M. 레디 지음, 김학이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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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사고


  오랜 시간 감정은 이성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이성이 객관적이 분석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 얘기되는 것과 달리 감정은, 그것 자체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거나 말했다.

  감정이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나아가 감정이 생각에서 발현된다고, 감정이 사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만난 『감정의 항해』는 격하게 반가운 책이다. 저자 윌리엄 레디는 역사학 및 인류학 교수이다. 또한 행동주의 심리학 연구소 펠로로서 감정을 개념과 감정연구에 관한 역사를 분석하며 감정에 관한 새로운 이론틀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역사학 전공자로서 ‘감정’의 연구에 역사를 활용한다. 그가 끌여들어온 역사적인 시기는 프랑스 혁명시기이다. 대체로 감정에 관한 연구는 심리학이나 인류학에서 주로 다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연구를 혁명시기와 접목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고, 어떤 이론이 전개될 것인지 상당히 흥미진진한데 저자의 지식과 사료의 활용으로 인간의 감정에 관한 연구가 또다른 접근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크게 2부로 나뉘어 1부에선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다. 여기에서는 인류학과 심리학에서의 연구 내용과 함께 저자가 제시하는 감정의 이론틀을 제시한다. 2부는 프랑스 혁명시대의 감정을 저자가 제시한 이론의 틀과 함께 대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가. 서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감정은 학습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관해서는 심리학과 인류학에서도 어느 정도 견해가 일치되었다고 보고 있다. 저자의 이 주장의 이유는 이렇다.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감정 개념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감정 개념이 보편적이어야만 고통이란 무엇이며, 왜 우리는 모두 자유 속에서 살 자격이 있는지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역사적 변화도 유의미해지고, 역사가 인간의 감정 구조를 포착하려는 노력의 기록이요, 정치사회적인 질서를 그 감정 구조를 포착하려는 노력의 기록이요, 정치사회적인 질서를 그 감정 성격에 합당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의 기록이 된다. p9


  저자의 감정이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핵심적인 주장은 ‘인지’ 개념과 연관시켜 이야기된다. 감정은 상황에 대한 인지이며 인간은 특정 상황에 놓였을 때 목표가 정해진다고 본다. 그에 따라 생각 재료들이 활성화되고 그중 일부만이 의식에 입장하게 되는데 의식에 입장하지 못한 나머지 활성화된 생각 재료가 감정이다. 저자가 말하는 “이모티브imotive”는 바로 이 생각 재료를 활성화시키고 감정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이모티브가 가지는 중요한 함의는 그것이 감정만큼이나 사회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가 개개 구성원의 감정을 장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감정의 의미가 변한다면 감정 역시도 변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측면 때문에 저자가 프랑스 혁명의 역사 속의 감정을 분석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특정 ‘감정’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어떤 영향으로 변화되는지를 이 분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감정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단순하게 생각해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대한민국을 들끓는 ‘분노’라는 감정이 촛불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생각하면 더더욱.


  하지만 저자는 감정이 자유로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혁명시기를 구분하여 분석하면 감정체제에 대한 반응을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자유로운 감정의 항해를 펼쳐나가야 국민들의 감정에 대해 오히려 경직을 강요함으로써 혁명으로 연결되었다고 본다. 감정 피난처란 “감정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안전지대를 제공해주고 감정적 노력의 이완을 허용하는 의례, 공식 비공식 조직, 관계”라고 정의한다. 이 감정피난처는 기존의 감정체제를 뒷받침할 수도 위협할 수도 있는데 자유로운 감정의 허용이 이루어지지 않은 감정체제의 결과가 혁명을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의 감정을 유도한다고 했을 때 의도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의 감정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혁명의 시기는 자유로운 감정의 발현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들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실 프랑스혁명은 이타애적인 개혁 제스처를 수단으로 하여 프랑스 전체를 일종의 감정 피난처로 변모시키려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감정이 무엇인지 오해하는 동시에 국가의 물리력을 투입하여 이타애와 박애를 확산시키려는 역설적인 시도가 전개되자, 1789년에 설계되었던 감정 피난처들은 4년 만에 공포정치라는 악성의 감정고통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p223~224


  감정이 감정체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감정의 항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는 인간이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가 프랑스 혁명시기의 정치가들의 편지나 연설문, 민사소송의 판결문 등의 사료를 통해 분석한 내용은 저자의 우려가 나타난다. 그 시대가, 사회가 억압하는 감정체제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제한적이고 길들여진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 이것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과 같다. 감정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사고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누리지 못함과 같다. 감정이 사고와 다르지 않다면 감정을 규율하는 감정체제는 사고 역시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선의 감정과 사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시대, 감정의 자유로운 항해는 결국 그 사회의 문화와 규율의 수준이 어떠한가가 관건이다. 그러나 또한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감정체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권력층의 입맛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감정이 자유를 누리는 인간들이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한다는 것을 감정의 항해를 보며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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