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워터십 다운을 향해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Watership Down 

리처드 애덤스, 사계절 2002.


    제법의 작가들이 출간을 거절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 애덤스의 열한 마리의 토끼 이야기 역시도 그랬다. 그가 렉스 콜링스라는 편집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책으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만큼이나 책을 ‘보는’, 작가를 ‘보는’ 눈을 가진 이의 역할에 감사한다.

  그렇게 고전에 반열에 오른 <워터십 다운>의 작가 리처드 애덤스가 크리스마스에 사망했다. 그가 52세에 쓴 <워터십 다운>은 열한 마리의 토끼 이야기로 그가 환경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라 한다. 이 작품에 대한 여러 출판사의 거절의 이유는 내용이 너무 길다는 것과 토끼들이 귀엽지 않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독자의 입장에선 이야기가 ‘너무’ 긴 줄 모르겠고 토끼는 귀엽기도 했지만 안타까웠다.   이야기는 모두 4권이다. 1부는 택지 개발로 인해 살 수 없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이야기, 2부는 토끼들에게 이상향이라 불리는 워터십 다운에 가는 과정, 3부는 에프라파 잠입 작전과 탈출담, 4부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에프라파 토끼들과의 싸움을 담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열한 마리의 토끼들이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모험이라 불릴 수도 있지만 이 토끼들의 모험은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모험 소설이 가지는 흥미진진함과는 다르다. 토끼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기에 추위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는 듯 열한 마리의 토끼들은 각각의 캐릭터가 확실하다. 그만큼 이야기 속에서의 역할들이 뚜렷하다. 예언능력을 가진 파이버, 지도력을 가진 헤이즐을 비롯하여 이름처럼 용맹스러운 빅웍, 이야기꾼 댄더 라이언, 지략있는 블랙베리, 굴 파기의 대가 스트로베리, 어리고 소심한 토끼 에이콘과 핍킨 등이 그렇다. 이들 토끼들은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며 위험을 헤쳐 나간다. 이 상황속에서 지도자의 역할, 헤이즐의 활약이 눈에 띌 수밖에 없지만 예언가인 파이버도 탁월한 이야기꾼인 댄더 라이언의 역할에도 눈이 간다.

  두 토끼의 역할이 다른 듯하지만 일종의 종교적·정신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파이버의 예언적이 능력은 샌들포드 마을의 위험을 감지하고 새로운 곳을 가야 한다는 계시를 전한다. 그리고 댄더 라이언은 토끼들이 힘들어 할 때, 지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할 때면 토끼들 사이에 전해지는 신화이야기를, 전사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토끼들에게 힘을 북돋는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에게도 해당되는 것일 게다. 삶을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되어줄 신념과 그 신념을 강화시켜줄 믿음을 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토끼들이 각자의 성격을 가지고 위험하고 불안한 모험을 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리더 헤이즐의 역량 덕분이다. 헤이즐은 강압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아니다. 자신과 함께 하는 토끼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문제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 지를 잘 아는 리더이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다고 할까. 단순한 여행이 아닌, 목숨을 걸어야 하고 유혈이 낭자한 전장의 여정에서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헤이즐은 늘 고민하고 고뇌하며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이러한 상태라고 한다면 헤이즐과 함께 하는 토끼들이 가는 곳은 그 장소가 어디인들 상관없이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어디’라는 장소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들이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가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더 나은 곳을 찾기 위해 나아간다. 위험한 곳 샌들포드를 떠나 공포가 법인 에프라파 마을을 지나 그들이 정착하게 되는 곳.

 토끼들이 조금 더 여정을 계속하고 정착할 마을을 찾게 되는 것은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지만 그 어느 곳이라도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서로에게 믿음을 가지며 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물리적으로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했던 것은 토끼들이 자신들이 민주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익히고 배워나가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토끼들은 자신들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길 위의 나날들을 보내는 과정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한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임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길 위에서 토끼들이 익힌 삶에 대한 자세가 정착해서도 이어질 것이다.

  토끼들의 모습을 통해 보다 나은 곳이 물리적 환경의 요소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제 저물어가는 2016년의 대한민국에 절실한 깨달음을 주게 할 열한 마리의 토끼이다. 특히 헤이즐의 지도력과 헤이즐의 진정한 조력자인 파이버의 관계는 국정농단이라는 이 유례없는 나라에 살게 된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을 정화시켜줄 것이다.

  토끼들이 나오는 우화, 어린이용 동화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 놀랄 것이다. 이 책은 토끼들의 생존의 이야기이며 정치와 체제에 관한 이야기이니까.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토끼들처럼 수많은 촛불들이 불을 밝힌, 뛰어난 국민들이 살고 있는 대

한민국이 2017년엔 새로운 나라로 정착할 수 있기를. 그리고 헤이즐과 같은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라스푸틴이나 한국판 라스푸틴이 아니라 파이버와 같은 조력자가 탄생하기를. 각각의 장점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이기를. 그렇게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나가면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기를.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의 토끼 이야기 속에 리처드 애덤스는 이 모든 것을 심어놓고 한세기를 마감하고 사라졌다. 그의 영혼도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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