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의 자서전 - 시로 쓴 소설 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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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의 로맨스


빨강의 자서전 Autobiography of Red-시로 쓴 소설 

  한국에서 빨강에 대한 공포와 금기가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이라고들 말한다. 붉은 악마의 물결이 휩쓴 그때부터 “빨갱이”라는 말의 순화가 이루어졌다. 물론 여전히 빨갱이에 대한 노골적인 수사와 몰이는 유효하다. 빨강의 열정에 편승하여 빨강색 옷을 입고 빨강색 간판을 달고 빨강빨강 전도하던 이들이 그 몰이의 대표적 주자이다. 그것이 코메디 같아서 어떤 이들에겐 빨강이 종북의 상징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 야유의 대상이 될 지 모른다. 어쨌든 여러 모로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고 만 빨강이다.

  빨강이 의도치 않은 자의적 해석과 이미지 투영으로 빨강은 탄생 이래 영원히 그 상징에서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빨강에 드리워진 수많은 이미지 중 하나가 ‘괴물’이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죄의 대가로 세 개의 머리와 몸을 가진 괴물이 키우는 소들을 훔치는 과업을 수행한다. 괴물의 이름은 게리온이고 붉은 섬이라는 뜻의 에리테이아(Erytheia) 섬에 살고 있다. 그가 키우는 소떼들 역시 붉다. 

  이 이야기에 상상의 나래를 더해 그리스의 서정시인 스테시코로스는 빨강 소떼를 돌보는 이상한 날개가 달린 빨강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의 시의 전문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현대에 노벨문학상 후보이자 T.S. 엘리엇 수상자인 작가 앤 카슨은 게리온의 이야기를 재창작한다. 빨강 괴물 게리온의 이야기를 시로 쓴 소설로 엮어 낸다.

  상상력이 스테시코로스에게 빚을 진 측면이 있겠지만 형식과 이야기의 구조와 완결은 오로지 작가의 몫이다. 이 이야기는 게리온의 시선에서 고전의 이야기와는 다른 형태로 흘러간다. 소설의 문장보다 시적 언어로 쓰여진 까닭에 함축적이고 미학적이다. 언어를 음미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더구나 이 이야기는 어린 게리온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기에 ‘괴물’의 성장기를 지켜보게 된다.

  우리가 아이에게 ‘괴물’이라 칭한다면 그것은 아이가 사회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인이 행하는 그것처럼 광기적인 절대 악의 모습을 지니지 않아도 또래와의 사귐에 소극적이거나 학교 생활에 부적응하게 되면 그 선에서의 다름을 이유로 괴물이라고도 부른다는 말이다. 그렇게 어린 게리온은 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행하는 이미지보다 그 나이의 아이들과는 ‘다른’ 이유로 괴물이라는 칭호를 부여받는지도 모른다.

  다르다. 외면적인 다름을 말하자면 어린 소년 게리온의 어깨엔 작은 빨강 날개가 있다.


네가 약한 아이라면

힘든 일이겠지만

넌 약하지 않아.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의 작은 빨강 날개를 가다듬어준 후

그를 문 밖으로 떠밀었다. p52~53


  게리온은 커다란 코트로 자신의 날개를 감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게리온은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로 자라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자서전’을 쓰기로 한다. 글자를 모르던 때부터 빨강 토마토 위에 10달러 지폐를 찢어 머리카락을 만들어 자서전을 만든 게리온은 자신의 자서전에 “내적인 모든 것들을, 특히 자신의 영웅적 자질과 공동체에 큰 절망을 안겨줄 이른 죽음에 대해 썼다.” 그리고 사춘기에 이르러 “헤라클레스를 만나게 되었고 삶의 세계는 몇눈금 하강했다.“

  다시 한번 제목을 보자면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엔 “로맨스”라는 부제가 있다. 이 로맨스가 말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건데 로맨스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그 의미를 생각한다면 필시 게리온의 로맨스라고 짐작할 만한데 그 어디에도 게리온의 이성의 대상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좀더 한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바라보면 명백히 헤라클레스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다. 삶의 세계의 눈금이 하강했다라고 할 헤라클레스와의 만남은 사춘기의 게리온을, 이후의 게리온의 삶을 변화시킨다. 둘은 사랑의 날을, 로맨스의 나날을 보낸다. 함께 화산을 보러 가며 여러 곳을 여행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이내 무심해진다. 게리온에게 실연의 상처는, 단순한 실연의 상처가 아니다.


그의 얼굴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실연당한 걸 잠시 잊었다가

이내 기억했다. 토사물이 요동치며

게리온에게로 떨어지다가 그의 썩은 사과 속에 갇혔다. 아침마다 충격이 되돌아와

영혼에 상처를 냈다. p109


  오랜 시간을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마주치게 되지만 헤라클레스 옆에 앙카시가 있다. 헤라클레스의 새 연인. 우연한 만남 가운데에서도 세 사람은 서로 어울리고 게리온의 빨강 날개를 보게 된 앙카시는 빨강 날개에 관한 전설을 이야기한다.


빨강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신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 미칠 것이다. p173


  앙카시는 헤라클레스와의 삼각점에서는 연적이지만 게리온의 영혼에겐 구원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줄곧 빨강 날개를 감추었던 게리온이지만 앙카시를 통해 빨강 날개의, 자신에 대한 ‘특별함’을 깨달아가기 때문이다. 빨강 날개, 날개는 날아오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신의 특별함을 깨달은 게리온은 날개를 움직여 날아오를 것이다.

  게리온은 자신의 자서전에 처음부터 자신의 영웅적 자질에 대해 썼다. 신화 해석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는 영웅의 여정, 모험담이라고 이야기했다. 영웅성을 부여받은 이가 온갖 고난을 헤치며 마침내 자신의 ‘소명’을 알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고 말한다. 영웅에겐 여행이 필수이다. 그러니 게리온 역시도 여행이 필연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로맨스”의 의미에 한발짝 들어가면 서구문학에서 로맨스는 중세의 기사모험담을 말한다. 그러니까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로맨스>는 게리온이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이며 영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게리온을 절망에 빠뜨린 건

그가 날개 달린 빨간 사람으로서 인생 초년에 일상으로 받아들인

조롱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지금과 같은 정신의 완전한 이탈이었다. p134~135


  게리온은 외면이 남과 다르다는 것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에 힘겨워했다. 어린 게리온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던 것은 게리온의 예민한 감수성을, 그 언어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언어와 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게리온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고 긍정적인 상태에 이른다. 세상의 모든 다름에 대해 갖는 부정, 차별이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암흑으로 잠식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름’의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수사는 이어지고 있다.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은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의 주체를 뒤집음으로써 ‘영웅’과 ‘괴물’과 ‘다름’에 대한 생각의 전이를 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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