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호밀빵 햄 샌드위치 Ham on Rye (1982년)
찰스 부코스키, 박현주 옮긴이, 열린책들, 2016.
자연스레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생각난다. “호밀”이 들어간 제목도 그렇거니와 남자 아이가 등장하는 성장소설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그 당시 자신이 쓴 소설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고,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물론 독자들도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작품이라고 한다. 찰스 부코스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인데,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을 내세운 찰스 부코스키의 이야기라고 대체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라 생각한다는 건, 거리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 작가의 거리 속에서 살아온 작가의 모습, 그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어쩌면 근원과도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이야기이기에 거칠게 표현하는 작가에게 있어서도 조금은 완화된 표현과 연민과 그리움이 깃든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어린 헨리 치나스키가 겉도는 삶을 살아가는 시초는 역시 사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린 소년은 그저 끔찍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버지도 끔찍하고 교실도 끔찍하고,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끔찍하기만 하다. 또한, 그 자신 역시도 끔찍함의 대상이 된다.
바깥, 뒤쪽 블라인드 사이로 아버지의 장미가 자라는 것이 보였다. 빨갛고 하얗고 노란, 커다랗고 탐스러운 꽃송이들이었다. 해는 아주 낮게 걸렸지만 아직 지지는 않았고, 마지막 해조차 아버지의 소유물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는 아버지의 집 위로 비치니까 나한텐 아무런 권리도 없다는 기분. 나는 아버지의 장미 같았다. 아버지의 소유물이지 내게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 물건…….p51
헨리의 아버지는 키우는 장미에겐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장미에겐 가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미는 장미하고만 어울릴 테니까. 헨리의 아버지는 가난하기 때문인지 가난을 경멸한다. 나아가 가난한 아이들과 헨리가 어울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헨리보다 잘난 아이들과 비교하며 폭력을 행사한다. 어머니는 헨리를 적극적으로 구원하지 않는다. 어머니 역시도 폭력을 당하며 살고 있고 그런 모습을 헨리에게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사랑받지 못한 헨리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런 헨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독일 이민자 가정 출신이란 아웃과도 같은 말이다. 헨리는 친구들로부터 일찌감치 ‘아웃’의 대상이 된다. 이유가 없이도 미워하고 이유를 만들어 미워한다.
그런 헨리가 가장 진정으로, 순수한 칭찬을 받은 것은 글짓기 수업일 것이다. 그러나 헨리는 그 글짓기가 상상으로 채워진 글이기에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래, 사람들이 원했던 건 그거였다. 거짓말. 아름다운 거짓말. 그게 바로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바보였다. 내게는 삶이 더 쉬워지겠지. p115
다니던 학교에서는 쫓겨나고 아버지로 인해 형편에 맞지 않는 학교로 진학해 사는 모양 때문에 오히려 더욱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헨리에게 또다른 위기가 다가온다면 그것은 이유모를 피부병이다. 그것은 학교를 그만둘 만큼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치료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드릴을 이용한 치료 과정은 끝이 없었다. 서른둘, 서른여섯, 서른여덟번. 더는 의료용 드릴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결코 있었던 적 없었다. 오로지 분노뿐이었다. 하지만 분노도 사라졌다. 내 쪽에선 체념도 없었다. 오로지 혐오, 내게 일어났던 건 혐오뿐이었다. 아무것도하지 못하는 의사들에 대한 혐오였다. 그들은 무력했고 나도 무력했지만, 유일한 차이는 내가 희생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집에 돌아가 삶을 누리고 잊어버릴 수 있었지만, 나는 꼼짝없이 똑같은 얼굴을 들고 다녀야만 했다. p210
더욱 더 껍질 속으로 들어가고 냉소적이 되어가는 헨리에게 있어 그나마 위안이라면 책이라고 할까. 헨리는 다양한 작가들의 책들을 읽으며 자신의 영혼을 채운다. 헨리는 그것을 마법이라 표현한다. 비록 밤에는 불을 끄라고 호통치는 아버지로 인해 글을 읽을 순 없지만. 그렇게 밤에는 글을 읽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가 어떡하든 헨리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버지의 욕심과 허영 때문이긴 하지만 이곳에서도 헨리의 적응력은 발휘되지 않는다.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일한 백화점 물류창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교수에게도 학교에서도 낙인찍힌 자가 되지만, 세상은 또한 그러한 괴짜에게 기이한 이에게 관심갖는 이도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헨리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고 혼자 있고 싶었다. 어떤 것에도 아무 흥미가 없었고 종종 열등하다고 느꼈으며 가난했고 주욱 가난하게 살 것이지만 딱히 돈을 원하지도 않았다.
나는 세계사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을 뿐. 무슨 헛짓거리인가. 부모가 성장기를 지배하고, 마음대로 휘두른다. 그런 다음 자기 혼자 나설 준비가 되었을 땐, 다른 사람들이 제복을 억지로 입혀서 엉덩이에 총을 맞도록 내보낸다. p384
그렇지만 그가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는 것처럼 그의 마음 속엔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있었는지 모르고, 그것을 헨리의 친구는 알아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한다.
「현실로부터 숨어 버리면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로 그게 작가들이 하는 짓이지!」 p375
작가가 될 생각이 없다, 관심이 없다가 아니라고 하는 것에서 헨리의 마음이 드러난다. 적어도 글쓰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헨리가 지속적으로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헨리는 떠돌이 개에게도 늘 괴롭힘을 당하는 고양이에게도 이제 막 거미에게 잡아먹히려는 파리에게도 관심을 쏟았다. 이들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이민자들과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을 향한 헨리의 관심은 그들에 대한 연민이자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을 것이다.
헨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살에 대해서는 귀찮아지기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나치도록 세상에 대해 관심없다고 말하는 헨리에게, 조용하게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는 헨리에게, 자살은 귀찮다고 말하는 헨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건 3년 치 식량이 있는 콜로라도의 동굴이었다. 엉덩이는 모래로 닦으면 된다. 무엇이든, 이 지루하고, 사소하고 비겁한 존재 속에서 익사하지 않을 수 있는 무엇이든. p302
일찌감치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며 학교와 사회에서의 위선적인 일들을 겪으며, 세상의 온기보다는 자신의 냉기에 더 익숙해 있던 헨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냉기를 세상의 위기를 허위를 날려버릴 따스한 온기였을까. 헨리에게 마법이 되는 책이 없었다면 헨리가 그나마의 삶을 버틸 수 있었을까.
친구는 전쟁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헨리는 그를 배웅한다. 늘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길을 걸을 때면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헨리는 멕시코 소년과 마주치며 기계로 권투 게임을 한다. 그리고 이겨야겠다는 기분을 느낀다. 그것이 왜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 여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그냥 중요하다고만 생각한다. 그것은 생존일까.
길을 걸으며 나는 혼자라 느끼지 않았고, 실제로도 혼자가 아니었다. 굶주린 잡견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불쌍한 동물은 끔찍할 정도로 앙상했다. 갈비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듯했다. 털은 대부분 빠져 버렸다. 남아 있는 털도 마르고 뭉쳐서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그 개는 사람들에게 매 맞고 위협당했으며 버림받아 겁을 먹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희생자였다.
나는 멈춰서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내밀었다. 개는 뒷걸음질 쳤다.
「이리 와봐, 난 너의 친구야…… 이리 와, 이리…….」
개는 더 가까이 왔다. 무척 슬픈 눈을 갖고 있었다.
「야,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한 거냐?」 p288~289
헨리. 그는 친구라는 말도 알았고 손을 내밀 줄도 알았다.
호모 사피엔스의 희생자, 헨리. 아, 사람들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