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그 아이는.
거짓말
제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한은형, 한겨레출판, 2015.
1996년의 여름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겁 많은 ‘자살 수집가’의 기억은 습관적인 거짓말을 내뱉는 열일곱 살, 최하석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땅의 고등학생들에게 모범생에서 물러나는 일은 성적 때문일까. 공부하는 것이 싫고 성적이 좋지 않아 모범생이 되지 않는 것인지, 모범생이지 않기 때문에 성적이 안 좋은 것인지, 그 선후관계를 명확히 따진들 무엇하랴. 어쨌든 이 땅의 고등학생들에게 성적 순위를 묻는 일 말고는 다른 어떤 물음도 주어지지 않는데. 한발 더 나아가 최하석은, 자신이 정박아가 된 기분이라 말한다. 그리고 퇴학이라고 해도 무방한 자퇴를 한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라기보다 남학생과 커튼을 덮고 자다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장소가 교실이기도 했고 커튼 속에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도 중요했다.
어쨌든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고 하석은 전학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채 학교생활을 한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취미는 자살 수집인 하석으로. 그리고 늘,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하석은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다. 가장 싫어하는 말이 ‘솔직’이니까.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 이게 솔직의 뜻이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거짓말을 즐겼고, 늘 뭔가를 숨겼으며. 바름을 혐오했고, 곧은 건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불투명한 사람이 좋았다. 어떤 투명함은 하나의 폭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p34
자신을 드러내는데 서투르며 거짓말로 그 시절을 견딘 하석. 왜 그토록 하석은 그때에 거짓말로 버터야 했을까.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이 여자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진지하고 모범적인 인생을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죽은 뛰어난 여자를. 내가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즉 부모의 관심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죽는 것이 유일했다. 언니보다 더 일찍. 그리고 더 애절하게.
나는 죽어서라도 사랑이라는 걸 듬뿍 받고 싶었다. 내가 언니보다 사랑스럽지 않다고 해도 불쌍하게 여겨진다면, 사랑 비슷한 걸 얻을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184
그러니까 하석의 거짓말의 이유는 보다 사랑받기 위함이었던가. 부모의 관심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였다. 하석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죽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은 겁이 많은 터라, 자신과 함께 죽거나 자신을 죽여줄 사람을 찾으려 한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자신에 비해선 나이가 너무나 많으셨고, 무엇에도 무덤덤한 분이었다. 그리고 집안에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언니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다. 60대의 부모님과 스무살이나 나이차가 나는 언니. 아마도 그 부모들의 사랑이 향한 곳은 그렇게 사라져버린 언니였다는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랑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고 싶은 고교생 하석의, 그 불안한 생각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면 언니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니의 첫 자살 시도도 열일곱 살 때였다. 나는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를 넘기면 죽지 못할 거라고 여겼을 거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잘 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멈춰야 한다. 낡기 전에 사라져야 한다. 완결된 이야기에 뭔가를 더 붙이는 건 억지로 늘려놓은 대하소설이나 다름없으니까. p203
거짓말을 좋아하는 하석이 거짓말의 많은 부분은 자신에 대한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거짓말이기에 하석이 소통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러나 하석이 유일하게 거짓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만나는 이는 PC통신 속 ‘프로작’일 뿐이다. 전제를 깔고 있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사실은 제 엄마인 언니를 하석은 그리워하는 것이었다면, 하석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관심과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사실은 할아버지, 할머니이지만 부모인 그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성장소설의 특징은 항상, 모범생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하니까. 그 애들은 늘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시기에 가지게 되는 온갖 의문에 대해 참으로 관조적으로 생각하며 또, 그러면서도 행동력이 끝내준다. 그러니까 성장소설 속에서 늘 ‘문제’가 있는 부모가 있고, ‘문제’가 되는 가정환경이 있고 그 ‘문제’를 문제화하는 아이들이 있다. 도식화하면 항상 아이들은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성적’에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문제로 규정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는 이들이 있다.
소설이 되기 위해선 언제나 ‘문제’가 되는 이들의 이야기가 필요하겠다만, 소설에서 바라보는 하석과 현실에서 바라보는 하석의 괴리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현실에선 ‘사건’만 보고 하석의 내면을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선 그들의 내면 따위야. 그러면서도 성장소설 속 아이들에게 붙이는 관용구 같은 말, “어른보다 더 어른 같다”는 표현이 참 낯설게 느껴진다. 이 무슨 말장난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