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a, Just Killed a Man
보헤미안 랩소디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재민, 2014.
퀸,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가 소설의 제목이다. 노래속의 처절한 절규가 전이되는 이 소설의 흡입력은 외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눈에 띈다. 퀸의 노래 제목, 현직 판사가 쓴 소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 그렇기에 ‘사건’이 무엇인지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이건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손가락 모양이 아닌 것 같은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본 의사 후배의 한마디에서 의심은 시작된다. 판사 하지환의 어머니는 무려 9년 동안을 류마티스 관절염약을 먹으며 병원치료를 받았고 그로 인해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것을 조사하던 중 어머니는 퇴행성 관절염이었을 뿐인데 병원 의사, 우동규에 의해 지속적으로 독한 류마티스 관절염약을 먹게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류마티스 유병률이 일 퍼센트 미만임에도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던 신해시의 경우 인구의 10%나 되었다. 신해시에만 우리나라 평균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수를 뛰어넘은 류마티스 관점열 환자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고발을 진행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더 확장되어 간다.
우동균은 많은 일반 환자들을 특정 약을 먹어야 하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로 진단함으로써 이익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환자들의 인권은 외면하고 자신이 가진 의료정보와 권력으로 환자들을 제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삼았다. 어찌 보면 한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이 비윤리적인 의사의 행동이, 그로 인해 당연히 처벌되어야 하는 우동균의 행동이 발각되고 이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생명과 관계된 일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용서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한 조직, 한 나라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비리에 얽혀 난리가 나는 상황이 가능할진대 한 도시에서 맞닥뜨리는 이런 상황은 오히려 더 그쯤이야 하게 된다. 이지환 역시 판사임에도, 그가 가진 사회적 권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압력이 들어오는 것이다.
“신해성모병원은 신해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종합병원이야. 직원들만 천 명이 넘어. 신해시의 정치인들, 종교인들, 지역 유지들과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어. 선배는 단지 의사 한 명이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거야. 이기기도 어렵고 이긴다 해도 선배가 다칠 거야.”
“그렇다고 엄마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네 엄마가 당했다고 생각해봐. 그래도 그렇게 말할 거야?” p80
우리는 오로지 ‘정의’와만 싸울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의 생명이 담보로 된 의료사기죄인 이 사건은 언론에서조차 보도되지 않는다. 특히나 지역신문조차 외면하는데, 신해성모병원이 신해시에서 가장 큰 광고주라는 이유 때문이다. 한 사건이 감춰지는데는 그것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 경참, 범죄자를 눈감은 검찰, 법의 정의의 잣대를 엉뚱하게 적용하는 법원이 모두 함께 한다. 여기에 신해병원은 종교단체에서까지 보호한다. 정치, 권력, 종교. 무엇보다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거듭 받는다. 판사 이지환은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고발하며 맞서보지만 그 어떤 법적인 처벌이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경험을 통해 판사 이지환은 “검찰의 힘은 사람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 가야 할 사람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데 있음을 절감”하기까지 한다. 우동규 한명의 비리를 처단하기 위해, 아니 처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줄줄이 나서야 하는 수많은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이 익숙하면서도 놀랍다. 그 줄줄이 기차 중 어느 한칸도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들이 이 사회에 사회적인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배운 이들이라는 것도, 온갖 세상의 정의를 다 지켜내는 사람이라 포장하는 것도.
이 사건은 이렇게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이지환은 허무하게 종결이 난 사건을 안고 지속적인 공황장애를 겪는다. 신해시에서 겪은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 큰 충격을 얻은 탓일까. 해결되지 않는 사건의 억울함이 마음에 남아 있기에 어머니의 물건만 보면 공황장애를 겪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는 판사 아닌가. 결국 후배의 권유로 정신분석을 받으며 하지환은 자신의 내면의 갈등과 정신적인 이 장애의 원인을 찾아내고 상처를 치유해간다. 퀸의 노래 가사처럼 그의 어린 시절엔 홀어머니의 지나친 기대에 휘둘렸던 어린 지환이 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살아온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들. 그리고 우동규의 사건을 조사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 사망한 친구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처럼, Mama, Just Killed a Man…
이지환의 상처는 치유해갈지 모르나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상처는 어떡해야 하나. 이것이 실화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공황장애를 겪을 것만 같다. 이 지독하게도 답답한 사회의 정의라는 것들. 우리 사회에서만 적용되는 정의의 다른 모습들. 사회정의가 바로 세워지지 않을 때면 어떡하든, 개인적으로라도 정의를 실행하려 하는 경우도 많다. 사회정의가 무너진 것을 보고 겪는 것만큼이나 개인적으로 정의를 실행하는 일도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힘든 일이고 위험한 일이다. 허나, 개인적으로 ‘정의’를 실천한다는 말이 가지는 함의는 무엇이겠는가. 우리 사회는 이 정의가 무너짐으로써 정의를 외면하는 무리들의 집합체 속에서 늘 Mama, Just Killed a Man… 보헤미안 랩소디와 같은 노래를 부르는 소년들을,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