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의 공포



 선량한 시민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서진. 2013.


 그것은 누명임이 분명했다. 평범한 주부이자 교통 법규도 한번 위반해본 일 없는 모범적이고 선량한 시민이었던 

은주가 어느 날 아침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이다. p7


  이것이 사실이라면 또 한명의 평범한 시민이 공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당했다. 그것도 살인 사건 용의자로. 그렇기에 이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더 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 그 평범하고 모범적이고 선량한 시민, 은주는 명백히 살인자이다. 더 정확히는 연쇄살인자가 된다. 그녀가 아닌 다른 선량한 시민이 은주에 의해, 은주로 인해 희생된다.  

  시민 강은주. 평범한 40대 전업 주부. 시아버지와 남편,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시아버지는 한때 큰 교복공장을 운영했고 남편은 사업이 망한 후 백수이다. 그렇기에 은주에게서는 그 어떤 살인의 동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은주 역시 동네 개천에 만취한 60대 남자가 죽은 사건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한다. 실족사로 결론 내리려던 사건이 은주가 살인자라는 목격자로 인해 조사가 이뤄지지만 역시 경찰도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한다.

  은주는 고교 동창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개천에서 오줌을 누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서 등을 밀어버린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사건은 실족사로 처리되었고 자신은 기억을 잊고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목격자가 있다는 말에 바짝 긴장한다. 그리고 목격자로부터 살인의 이유를 재촉받자 그의 정체를 알아내어 마시던 막걸리에 농약을 타 넣음으로 그를 제거한다. 이제 다시 은주는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은주의 오해로 목격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살해된다. 여전히 목격자는 남아 있다.

  목격자는 살인 현장을 보고 두려움과 공포보다 ‘궁금함’이 더 차오른다. 관련없어 보이는 이를 살해하는 이유를 알고 싶은 소설가를 꿈꾸는 논술강사 윤창수. 그는 은주의 모든 것을 목격하고 관찰하며 은주로부터 살인의 동기를 알기 위해 애쓴다.

  알고자 하는 자와 알리고 싶지 않은 자의 싸움이 시작된다.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 독자의 입장에선 윤창수의 편에서 은주의 살해동기를 알고 싶다. 그러나 은주 자신도 그것에 대해 뚜렷이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살인을 하고서도 멀쩡히 일상을 살고 있고 그 자신도 그것에 대해 무심하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단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은주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왜 가공의 연쇄 살인범이 현실로 나타났는지, 자신은 왜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였는지, 사람을 죽이고도 왜 아무렇지도 않은지 이해하려 하지 말자. 단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뿐이다. p195


  생각해보면 선량한 시민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찰이다. 동네에서 일어난 두 건의 살인에 대해 경찰은 전혀 범인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첫 번째 살인이 동기없이 일어난 것이라면 두 번째 살인은 명백한 동기가 있다. 그러나 두 사건의 관련성을 찾지 못하는 경찰은 여전히 첫 번째 살인 용의자가 아닌 은주에 혐의점을 두지 않는다. 그러기에 은주는 너무나, 평범하다.

  사람들은 동네의 연속적 살인에 공포를 느끼지만 은주는 예전처럼 별일없이 산다. 단지, 윤창수와의 밀당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윤창수는 다르다. 그는 삶이란 우연과 충동에 의해 이해할 수 없이 흘러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은주의 살인 동기를 알고 싶어하는 그는 살인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고교 시절 과학실 수은 중독으로 과학교사가 사망했는데 그날 창수가 수은을 쏟았던 것이다. 과학 교사의 죽음이 창수의 실수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창수에게 그 기억은 오래 남아 있다. 창수는 그 죽음의 이유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의 그 사건에 대한 이해를 풀고 싶은 욕구이듯 은주에게 집착하는 그로 인해 결국 창수가 두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알다시피, 너무나 평범하지 않다.


동기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창수는 의심스러웠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고, 엄청난 일에는 그만큼 엄청나고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로 절박한 심정이 되곤 하지만, 그 절박함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이유가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것을 동기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p93 

  

  왜? 왜 그랬습니까?

  뉴스를 보아도 드라마를 보아도 무엇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 질문은 항상 “왜”다. 얼굴을 가린 범인들에게 묻는 기자들의 질문은 항상 “왜 죽였습니까?” “미안하지 않습니까?” “사과한마디 하십시오.” 가끔 이런 말들이 너무나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체포되어 경찰서로 이성되는 범인들을 향해 미안하냐고 물은들, 사과하라고 말한들…. 그럼에도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그러면서 범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비로소 심신의 안정을 느끼는 듯하다. 그리고 범인이 묵묵부답이면 그것대로 또 비난을 쏟으며 참을 수 없어 한다. 어떤 경우라도 잘못한 사람에게서 그것의 진정성을 떠나 입 밖으로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선량한’ 시민인 우리.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의 껍질 아래 비인간적인 공격성과 철저한 이중성,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무심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니 창수는 거의 전율을 느꼈다. 그 전율은 기막히게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충격과도 유사했다. 평범한 말만 골라 하면 할수록 은주는 더 신비롭게 보였고, 은주 앞에서 자신은 너무나 평범한 인간인 듯한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p133

 

  선량하게 살고 있고 선량한 이웃과 살고 있고 선량하고 싶은 시민은 ‘선량하지 않은’ 이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몸속에 그러한 기질이 내재되어 있고, 그러한 기질을 드러낼 환경 속에서 살거나 자라 와 ‘선량하지 않은’ 시민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편견이 그 옛날부터 범죄자의 얼굴은 따로 있다, 같은 생각을 만들고 신념화한다. 실체를 알아보기 보다는 외면에 표피에 집착한다. 우리들 살고 있는 곳곳에 속속들이 진실을 감추고 선량함을 가장한 ‘은주’와 같은 시민이 아주 평범하게, 아주 우아하게, 아주 별일없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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