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문학동네, 2016.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은 캐릭터의 특성이 어떠한 경우라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난받지 않는 것일 게다. 현실 가능성을 가늠한다 해도, 우선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전제하기에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김금희 소설에선 이야기는 사라지고, 아니 조금 뒤로 가고 인물이 부각되어 남는다.

  가령,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양희가 어쨌다거나 필용이 어쨌다거나 하는 것 없이 통째로 ‘양희’가 생각나는 것처럼. 굳이 연관성을 짓자면 양희는 캐릭터는 드라마 <연애시대>의 ‘지호’ 캐릭터가 떠오른다. 떠올라 가만 생각하니 드라마 속에서 지호 역시, ‘양희’와 같은 톤으로 사랑을 고백했고 고백을 들은 남자는 필용과 같은 반응을 한다. 그래, 이렇게 유사 캐릭터가 생각났으니 “독특한” 이란 수식어를 빼도 되겠다. “조중균”이나 “세실리아” 역시도 그들의 특징이 너무나 뚜렷하여 현실세계에 없을 듯한 인물인 듯 보였다가 점점 그들의 행동이, 사고가 뭐가 그리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로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너무나 똑같은 것일 수도 있다. 특별한 ‘다름’은 ‘나’와 같지 않음이 우선하고 ‘내가 아는’ 선에서의 다름이 되니까. 누군가의 다름이 내가 쫓고 싶은 것이라면, 지양하고자 하는 바라면 그 인물의 ‘다름’은 각각 다르게 다가오지 않겠는가.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모습의 ‘나’가 있다. 그 많은 면면 중에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세실리아’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세실리아’를 기억하며 그것이 ‘세실리아’라고 자신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내 기준으로 구별하고 그것에 의지하여 사람을 판단한다. 같지 않음의 이유로 ‘판단’의 대상이 되는 양희의, 조중균의, 세실리아의 다름은, 어떻게 ‘나’의 세계와 가까워질 수 있는가.


양희와 필용의 허무하고 특별한 것 없던 관계가 다른 색채를 띠게 된 건 양희의 느닷없는 사랑 고백 때문이었다. p20



  나와의 거리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가 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인의 ‘고백’이다. 양희만이 갖는 고백의 특별함이란 그것이 느닷없고, 상대방의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해 보인다는 것이다. 사랑 고백임에도 건조하고 무심하고 또한 지극히 일상적인 이 고백의 힘은 오히려 고백받는 이를 당황하게 하며 마침내, 강한 힘을 부여하게 한다.

 

시설들에게는 말이 없고 시설들에게는 응시가 없다. 시설들에게는 관계가 없고 시설들에게는 터치가 없다. p17~18


  시설관리로 인사이동 조치된 ‘필용’이 내뱉는 말을 인간관계로 돌려서 이야기하면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타인을 이와 같이 ‘시설들’로 바라보다가 고백과 같은 일들, 조금도 명민하게 갖는 관심,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관계의 전이를 이루게 된다는 것. 양희가 독특하며 유일한 캐릭터라 생각하다 이내 비슷한 ‘지호’를 떠올리게 된 것처럼, 결국엔 조금씩의 유사성을 찾아 관계를 맞추어가는 것이라는 것.

  「너무 한낮의 연애」의 연애가 제목처럼 양희의 이름처럼 ‘양’의 기운이 샘솟아 전체적인 서술의 분위기가 같을 줄 알았더니, 그렇진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양희의 기운만이 남아 책의 느낌을 지배한다.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 나도 모르는 새 내 등을 누군가 토닥여 주는 느낌이. 물론 그것은 양희일 거고. 양희의 고백을 받은 듯, 고백한 당사자는 이미 저 멀리에 있는데 뒤늦게 양희를 쫓아가고 있다. 물론, 이때의 양희는 작가 김금희일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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