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2016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서 외면적으로 눈에 띈 건 등장인물의 공간적 위치다.  20대의 청년들이 당연하다는 듯 어딘가, 아니 구체적으로 다른 나라에 있거나 가려거나 갔다 왔다. 작가가 교환학생이나 외국 생활의 경험이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나는 왜 그많은 이야기들을 제쳐두고 이게 제일 눈에 띄었을까.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낮게 깔린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상태’처럼 느껴졌다. 정서적인 느낌을 말함인데, 정적인 이 분위기는 배경에도 영향을 미쳐 이국의 지명이 등장함에도 그곳이 국내인지 국외인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어찌 보면 지명이란 부수적인 것일 뿐, 본질적인 아닐 것이다. 그것이 내용을 압도하는 공간적 배경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소설 속 이국은 마냥 낯선 곳이고 먼 곳이라는 이미지가 약해지고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p31. 쇼코의 미소 


  또한 우리의 청년들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그 삶이 비슷한 일면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일지도. 그들은 희망하거나 절망을 이유로 한국을 벗어나 있지만, 희망이나 절망의 근원은 ‘내적인 것’이 더 주요한 해결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심리적이든, 공간적이든.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p89. 신짜오, 신짜오


  또하나, 걷히지 않은 안개의 느낌은 타인에 대한 ‘나’의 태도다. 제 이해의 틀에서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외면하진 않고 있구나, 라는 느낌. 그래서 희미한 안개 속에서 그들은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라고.  베트남 전쟁과 세월호, 그리고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하면서 엮어 가는 이야기들이 시대적인 우울을 주면서도 그래서 무거움을 인식시키면서도, 사람에 기대어 희망의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아픔을 보아가도록 하면서. 그래서, 이 안개 속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서로 의지하는 것일 거라고.

  이것이 우울에 내려앉는 느낌이 들다가도 되살아나도록 이끌어 주는 힘인 모양이다. 최은영의 우울은, 퇴폐적이고 무겁지 않은 우울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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