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순간에는 무엇이 없는가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최진영 저, 실천문학사, 2013.
단번에 이해되는 진실이 아니라면 그건 가짜야. p102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있으니 이건 가짜인가. 최진영은 스토리보다 독특한 구성방식으로 이야기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기억을 전개한다. 그리고 잽을 던지듯 짧게 끊어치는 문장과 문단. 한가득 글보다 여백이 더 많은 페이지.
이렇게 ‘기억’을 붙들고 있는 것은 책 속의 주인공이 ‘죽지 않은 이유’를 찾는 과정인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인가. 달리 생각하면,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죽어야 할 이유와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죽어야 할 이유와 죽지 않아야 할 이유가 공존한다면 어느 것에 더 무게가 지워진 채로 이야기가 전개될까가 궁금하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p16
주인공 원도. 자신이 살아온 하루하루를 모조리 기억해야 죽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그의 기억 속에서 원도는 어떤 사람인가.
비록 파산하여 빈털터리가 되었고, 도망자 신세에, 간경화로 매일 피를 쏟아내고 있으며 가족에게도 버림받았지만, 아니, 가족에게 가장 먼저 버려졌지만, 때문에 당장 내일 죽더라도 이상할 것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 전부가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원도의 머릿속에는 버튼 하나로 원도를 박살 내버릴 시소가 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과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같은 무게로 시소의 양 끝에 앉아있으며, 원도는 어느 쪽으로 몸을 기울일지 선택하지 못한 채 시소의 중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최근 것이고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은 오래전 것이지만, 최근 것이라고 해서 더 가볍지도, 오래된 것이라고 더 묵직하지도 않다. p41
이것은 기억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기억 속엔 모든 열패의 순간이, 찌질한 순간이 기록되어 있다. 차마 기억하지 않은 척하다가 ‘죽음’을 가까이 둔 상황에서야 처절히 드러나는 삶의 기록엔 생각보다 ‘구멍’이 많다. 그 구멍을 메우지 못했기에 현재의 나가 만들어졌고 죽지 않은 나가 만들어진 것인가. 타인이 보기에 왜 죽지 않는지 마냥 의아스러울 뿐인 원도의 현재에는 횡령, 사기, 탈세, 살인 혐의가 전전하며 여관마다 죽음의 징조를 드리우는 원도를 불편해하는 주인들에 의해 감시받거나 쫓기는 상태의.
기억을 거슬러 죽어야 할 순간을 회상하지만 왜인지 다 ‘아니다, 아니다’가 되어버린다. 그의 기억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그의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두 명의 아버지가 있다. 죽은 아버지와 산 아버지. 어머니는 이유없이 울면서 마냥 봉사활동을 다니고 자신은 어렸을 적부터 도둑질에 익숙했고 은행이란 간판을 달고 대부업을 하는 곳에서 횡령을 하면서 열심히 일지만 투기는 실패하고 횡령건이 적발되며 아내와는 서류상 남남이 된 채 한순간에 도망자가 되어 버린 원도.
기억을 더듬은 곳에 죽은 아버지는 ‘만족스럽다’는 글자와 ‘나를 믿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물을 마시고 죽었다. 그러나 그 사이의 구멍 속엔 죽은 아버지는 물컵을 원도에게도 내밀었으니, 왜, 원도는 죽지 않았는가가 삶의 끊임없는 질문이 되어가는 것인가. 산 아버지는 ‘모든 걸 이해하라’고 하지만 원도는 모든 걸 뒤집어 대책없이 산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마침내 그가 기억하는 것은 하나다. 장민석. 그가 사는 게 아니라 죽지 않은 이유.
기억 속의 열등감.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 엄마에게 사랑받는 아이, 장민석에 얽힌 기억이 원도의 이유다. 원도의 기억을 따라가다 원도가 죽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게 될까.
축복은 드물다. 흔해 빠진 인간에 불과한 원도는, 기억도 학습도 젬병인 원도는, 자기를 뚫어버린 그것을 기억하기보다, 몸에 난 구멍을 기억했다. 뭔가가 나를 뚫고 지나갔어.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확 지나가버렸는데 여기 구멍이 있어. 여기로 자꾸 아픈 바람이 불어와 엄마, 여기 있어야 할 게 없어 엄마. 내 몸에 이게, 이게 대체 뭐야 엄마, 원도가 운다. 무서워서 운다. 공부를, 싸움을, 축구를, 말을, 그 무엇이든 장민석보다는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따라했다. p64
여기엔 원도처럼 많은 구멍이 있다. 왜 죽은 아버지는 죽었는가. 금기시되는 그것은 자살인가. 원도와 함께 죽으려고 한 것인가. 원도만 죽이려 한 것인가. 엄마는 왜 울기만 하는가. 산 아버지는 친아버지인가. 모든 의문이 원도에게 들이닥치지만 속시원히 말해주는 이는 없는 채 원도는 어린 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죽을 수도 있었다는 공포감과 자신을 외면하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장민석’이란 아이에 대한 열등감 속에 허우적이며 살았다. 원도가 원하는 그녀 역시 장민석이니까. 장민석이 원하는 것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되고 마는 삶을 살아온 원도는 사는 것이었을까. 원도에겐 자신이 왜 죽지 않았는가보다 더한 질문들이 많이 있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해 주지 않는다.
제 삶의 주인공은 결국 제 자신이라고 말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임을 생각할 때 원도는 어린 시절부터 제 의지와 함께 사람들로부터 내쳐지는 삶을 살았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에서부터 새아버지가 나타나는 것,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가 제 삶에 나타나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며 살아가는 것까지. 왜 그토록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제 아이를 그렇게 외면해 버렸는지, 끝까지 엄마는 원도를 안아주지 않는다.
원도의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삶이 어긋난 순간. 분명 그것은 원도 하나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든 뒤틀려버린 순간에 무엇이 어그러졌는지는 알듯하다. 원도가 갈구하는 ‘사랑’이 없었다. 원도가 죽지 않은 것은 마지막 한순간이라도 사랑을 위로를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