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탈출기


망원동 브라더스, 김호연 저, 나무옆의자, 2013.


  누군가의 집을 구경한다는 건 그 사람의 내장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내시경으로도 볼 수 없는 몸속 어떤 상태 말이다. ‘방학 옥탑남’에게선 소화불량이 엿보였고, 그에 비해 ‘수유 반지하녀’는 리드미컬한 연동운동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 옥탑방은 어떤가? 아마도 만성변비일 것이다. 빠져야 할 똥차가 너무 많은. p251


  여기, 그런 집이 있다. 똥차가 가득한 집. 이 소설은 그 집으로 안내한다.

  세상에서 백수로 산다는 건 삶에서 뒤쳐진 제일의 선으로 이야기된다. 벌써 삼심 중반, 나이도 먹어가지만 서울 한켠에 무려 8평짜리 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그 삶에서 위로가 되는 일일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 수입이 없다 뿐이지 무명의 만화가라는 직업도 가지고 있는 백수니까.

  내 공간을 가지고 이 공간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도 소통하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히키코모리가 되어 우울과 절망에 풍덩하거나 타인을 해치는데 열을 올리는 인간이 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참으로 자랑스러운 백수라고 할 수 있겠다. 말이라도.

  이런 옥탑방 속으로 어느날 갑자기 타인들이 침투한다. 백수가 가진 유일한 공간에 타인이 들이닥치는 이들은 한여름의 모기만큼이나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낯모르는 이들이 아닌 이상 거절하지 못하는 이 백수같은 오영준 작가의 성격 덕분에 점점 옥탑방은 10대에서 60대의 남성들이 우글거리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함께 직장생활을 했으나 지금은 기러기 아빠가 된 40대 김부장, 만화계에 입문하게 해준 50대의 황혼이혼남이 된 싸부, 그리고 후배인 만년 고시생 20대 삼척동자가 푸닥거리며 사는데 이들을 보며 집주인이자 오지랖이신 60대의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이자 자퇴생인 10대도 이 옥탑방을 들락거린다. 이들은 각자의 고민들을 지니고 옥탑방을 피난처로, 도약의 장소로 여긴다.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대변하는 듯한 이들은 문제만을 안고 고뇌하며 마냥 우울에 빠져 있지 않다. 물론 사람이 원체 많다 보니 그럴 틈도 없긴 하다.

  이들의 몇 달간의 동거기를 작가는 찌질하지만 우울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애틋하게 그리고 있다. 언뜻 보면 그 기간 동안 서로 M.T에 온 듯한 분위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며 끈적한 우애를 다진다. 작가의 이력을 보면 어느 정도의 상상력이 가미되었겠지만 충분한 체험이 바탕이 된듯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각자가 옥탑방으로 들어온 사연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면 옥탑방과의 이별은 그들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시종일관 유머가득한 잠시의 동거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안겨준다. 소설에서나마 모든 이들이 가진 문제가 해결되는 해피엔딩을 맞아서 기쁘다만, 이렇게 모든 이들의 문제들이 특히나 각 세대별로 대표되는 그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밖으로 나오자 동해 바다에서 나고 자란 듯한 탐스러운 불덩이가 어두침침한 새벽하늘로 떠오른다. 세상이 밝아오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네 명의 남자는 나란히 해변에 서서 말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연고도 나이도 다른 네 명의 남자가 서울 한구석 옥탑방에서 만나 여기까지 동행해와 해를 바라본다. 옥탑방에서 보던 그 해와 별다를 바도 없다. 근데 뭉클하다. 지난 몇 개월, 함께 먹고 자다시피 한 이 빈대 기생충 바퀴벌레들…… 같지만, 사실은 ‘입구멍’이라는 식구. 그동안 이들을 미워하고 꽁했던 내 소갈머리는 뜨거운 태양에 소독되고 시원한 파도에 세탁되고 있다. p266


  여기서 30대의 백수 아닌 백수의 존재는 참으로 크다. 이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을 포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지는 않더라도 그저, 외면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존재를 만났다는 것은 이 옥탑방에 들어온 다른 이들의 행운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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