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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여자들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의 제국
책을 읽는다는 건 책이 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를 함께 읽는 것이다. 더불어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는 시대도 책을 이해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은 시점은 내게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모두 안겨주었다.
부정의 요소라면 읽는 동안 너무나 박근혜와 최순실을 연상시키는, 아니 그쪽으로 생각이 몰려가는 바람에 ‘이 정도야 뭐’라고 한다거나 ‘아니, 어떻게 알았니?’라거나 ‘이거 한국 얘기야?’라고 이 여러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품을 국내 막장 드라마 이야기를 바라보듯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긍정의 요소라면 상상력이 지나치시네라고 할 것을 너무나 쉽게 이해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더욱 더 타이밍이 좋았던 점은, 소설 속의 ‘마약’이 나오는 부분을 읽을 때 한창 언론에선 향정신성의약품, 프로포폴의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그것이 아닌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목마른 여자들의 표면적 이야기는 여성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1970년 페미니즘 혁명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까지 이어지는 가장 강력한 여성 제국이 탄생한다. 모든 여성들이 자유와 행복이 가득한 나라로 알려져 있고 많은 이들이 가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혁명제국은 남성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와의 통로가 차단되어 누구나 쉽게 드나들지 못하고 방문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이다. 이 곳에 두 명의 여성과 네 명의 남성이 방문 허가를 얻어 발을 들이게 된다. 이들은 기자와 열렬 페미니스트로 구성된 지식인들이다.
제국은 ‘목자’라 불리는 유디크가 그의 어머니에 이어서 지배하고 있다. 이들 ‘원정대’는 제국의 안내인이 이끄는 대로 구경을 한다. 목자의 얼굴 모양을 따라 형성된 도로, 여성작가들의 책만이 가득한 도서관, 생식세포를 선별하고 연구하는 곳 등등을 둘러보며 나름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이곳에 반한 페미니스트 한 명은 제국에 살기로 결정을 할만큼 이들은 이 여행을 만족스러워하고 그들이 다녀온 제국에 대한 기사를 써서 많은 판매고를 올린다.
하지만 이들처럼 제국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이가 또 있다. 제국의 신민으로 살아가는 아스트리트. 그녀는 실제 겪고 있는 생활을 담담히 기록한다. 그녀의 일기 속의 기록들은 이 혁명제국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녀는 일반 신민에서 목자와 함께 생활하는 ‘자격’을 얻음으로써 목자의 생활과 혁명제국의 실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목격자인 것이다. 그녀 자신의 아들을 제 손으로 키우지 못할 만큼 이곳에서 남자들은 생존이 보장받지 못한다. 임신단계에서 아예 태어나지 못하거나 태어난 후엔 공동육아소로 보내져야 하고 성인 남성들은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 곳.
목자의 이름이 ‘유디트’인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 유디트라는 말을 듣자마자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떠올랐다. 성서에 나오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여인. 팜므파탈로 또는 애국심을 보여준 여인으로 그려지나 전자의 이미지가 더 강한 여인. 남성이 보이지 않고 생존을 위협받는 나라를 건설한 혁명전사라면, 클림트의 그림 속 유디트의 이미지가 딱 어울리지 않은가. 언제든 남성의 목을 베고 그 목을 높이 치켜들 수 있는 여인.
여자들을 위한 나라는 그저 ‘남자’들만 없으면 되고 남자들의 지배만 없으면 되는 곳으로 묘사된다. 이 혁명제국에 대해 알리는 아스트리트의 기록이나 원정대의 여행담이나 마냥 심각하지 않고 조금은 유쾌하게 그려진다. 재밌게.
분명 이 책의 표면은 남성사회를 전복시킨 여성사회를 그리는 페미니즘의 나라를 그리는 듯했다. 그러나 점점 그 부분은 지워져간다. 단지, 통치자가 독재자가 여성이라고 하여 페미니즘이라고 읽지 말기를! 오히려 이 책은 페미니즘을 가장한, 그리하여 자칫하면 페미니즘을 더 혐오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전체주의에 대한, 독재에 관한 이야기가 핵심이다. 우리가 익숙히 보아왔던 전체주의를 그린 몇몇 소설이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 전체주의는, 독재자의 모습은 통치자의 성별에 상관없이 이토록 같은 모습인 건가! 그것을 구성하는 이들도, 내세우는 정책도 도무지 독창적이지 않다. 파멸에 이르는 길까지도.
독재자들이 만드는 세상의 방식이 같다면 무력하게 통치당하는 이들의 모습 또한 다르지 않다. 세뇌당하고 서로 견제하며 두려워하거나 칭송하거나. 그래서 눈에 띄게 좋아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음에도 이 나라에 남겠다고 결정하는 페미니스트의 결정에 실소가 나왔고 이곳을 환상적인 곳으로 포장하는 원정대들의 글에선 왜 이 원정대들이 기자와 언론인으로 구성이 되었던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마치, 우리가 잘 아는 그렇고 그런 언론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눈막고 귀막고, 왜곡의 달인이 된 언론. 그래도 이들을 향해 비판하는 자가 있긴 하다. 이들을 향해, 이들의 부족한 통찰력과 엉터리 기록을 비판하는 말, 스탕달의 말을 빌려 이들 언론인들에 가하는 일침은, “경계를 잊지 마라.”
작가가 익살스러움을 가미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냥 전체주의의 민낯은 코미디다. 독재는 공포와 더불어 늘 이런 실소를 유발하게끔 하는 요소들이, 기가막힌 요소들이 늘 가득차 있다. 당장 2016년 대한민국에서도 목격하는 일이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결말이다. 좀 허무하고 치밀함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제국을 무너뜨리는 외부적 요인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한 경쾌한 묘사와 서사가 부실하게 그려져 있다. 내가 놓쳤나 생각했지만. 혁명제국을 또다시 혁명하는 세력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통쾌함이 덜하다는 이야기다. 뚜렷하지 않게 흘리듯이 그려져 있다. 하긴, 새로운 혁명세력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은 어리석을 지도 모른다. 이 독재정권에, 전체주의 국가에 대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질서를 요구하는 모든 이들 말고 또 누가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