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의 도덕성


  

  확실히 사람들은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최근 출간된 책들 중에서 1쇄를 넘은 책을 별로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은 5쇄를 넘었다. 게다가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니, 많은 인기를 끌고 있구나란 생각을 거듭한다. 읽다 보니 왜 열광하는지도 알겠다. 추리소설은 흥미가 당기기 마련이니까. 또한 추리소설의 일반적인 패턴이 잘 드러나 있다. 적절한 반전과 가독성, 흥미있는 캐릭터의 탄생.

   다른 것보다 이 책에서 흥미가 있는 것은 제목이다. 세상에, ‘죽여 마땅한 사람’이라니. 원제 역시 'worth killing'이다. 왜 'deserve to die'가 아닌가. ‘죽어 마땅한’과 ‘죽여 마땅한’의 차이는 흥미를 흥분을 더욱 높인다. 좀더 집중하게 만든다. 죽이는 자에 대해 더 집중하게 하니까.


내가 살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했죠? 사람들 생각처럼 살인이 비도덕적인 일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난 정말 그렇다고 믿어요. 사람들은 생명이 존엄하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아요. 생명이 존엄하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누군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미란다처럼 자신을 향한 상대의 사랑을 남용한다면 그 사람은 죽여 마땅해요. 너무 극단적인 처벌처럼 들리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모든 사람의 삶은 다 충만해요. 설사 짧게 끝날 지라도요.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경험이라고요. p84~85


  누군가를 ‘죽여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잴 필요 없이 싸이코 패스를 떠올리게 된다. 이유를 대며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은 이유없이 살인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를까.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땐 ‘사회정의’와 관련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 형태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개인적인 이야기였음을 알고 더디게 책장을 넘겼다. 익숙한 패턴의 추리소설 하나를 더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인 릴리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아마도 첫 번째 반전에서부터 이야기를 제대로 읽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공항에서 만난 낯선 여인에게 자신의 결혼생활을 술술 털어놓고 그녀로부터 살인을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받으며 자신이 살인에 대한 고민을 하던 남자, 테드. 과연 그가 릴리의 도움을 받아 불륜의 아내와 내연남을 ‘처리’할 것인가, 결심에 이르는 과정 중에 테드가 죽는다. 테드가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나 했던 생각은 이내 릴리와 테드의 아내 미란다에게로 주도권이 넘어간다. 그리고 그녀들의 과거가 펼쳐진다. 그들의 인연들이.

  이 이야기는 릴리, 테드, 미란다의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다 마침내 수면 위로 ‘살인 사건’이 드러나 형사가 개입하는 순간부터 ‘킴볼’의 시점이 더해져 진행된다. 그리고 릴리는 타인에게 살인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는 만큼 살인 경력이 있었다. 당연 릴리는 그 이야기도 풀어 놓는다. 당위성을 가지고. 그들 역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그들이 ‘릴리’에게 개인적으로 가한 나쁜 짓이지만 릴리는 그런 이들은 타인에게도 잘못된 일을 할 암적인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살인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그녀의 기본적인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타인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나는 어제 아빠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그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말. 어쩌면 나도 그걸 내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할지 모른다. 쳇을 죽인 후에도, 런던에서 에릭을 죽인 후에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내가 한 짓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미란다와 에릭은 둘 다 내게 상처를 줬다. 쳇은 그러려고 했고, 브래드는 직접 상처를 주진 않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 아마도 테드 스버슨을 내 인생에 들여놓은 게 실수였을 것이다. 난 지난 몇 주간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고, 다행히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젠 끝났다. 완전히. 앞으로는 조용히 살면서 다시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초원에서의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과 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 p406~407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진행될까. 릴리가 행한 살인의 이력을 보는 일일까, 릴리가 최종적으로 법의 심판을 받는 일이 될까. 자칫 살인자 릴리에 빠져 릴리를 응원할 수도 있다. 잡히지 말지어다, 릴리! 릴리의 이런 사고의 바탕엔 환경적인 요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파티를 벌이는 집, 엄마와 아빠는 상관없이 서로의 애인을 가지고 있는 집. 그 속에서 불안정하게 지내야 했던 릴리의 어린 시절이 있었노라고. 자신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야 했던 아이가 있었노라고.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로 인해 살인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 잠깐의 증오로 그런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이내 자신의 생각에 놀라 당황하고 자책하며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 절절히 반성하는 패턴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품고 있을 때 계속적으로 자신이 미워하는 이가 당연히 죽어야 되는 거라고 살인을 부추긴다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내 손이 아닌 타인이 그 일을 해준다기에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은 살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개인적인 원한으로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마침내는 확장하여 타당성을 부여하며 살인을 정당화하는 릴리의 행동은 “심판”인가.


그녀는 뼛속까지 썩어빠진 인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희생양을 다시 찾아 신나는지도 모른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에게 살인은 오랫동안 긁지 않아 가려운 부위였다. p218


  릴리에게도 감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죽인 이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릴리도 가진다.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죄책감과 후회는 아니다. 그저 외롭기 때문이다. 자신과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외로움.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의미였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여러모로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표현이었다. p376


  릴리는 살아남았다. 현재는. 릴리는 살인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선 시체를 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애초에 살인이 일어난 적이 없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그녀는 자신이 살던 집 외곽의 우물 속에 두 명의 죽여 마땅한 이를 숨겨놓았다. 그리고 그 집은 타인에게 팔려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될 것이다. 릴리는 계속 살아남을까. 그리고 계속 외로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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