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이공은 없다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장작인 이 소설에 어떤 심사위원은 대상이 되기를 바랐다고 했다. 이 전개 빠른 추리소설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이 거의 영화화되어서인지 일찌감치 세계문학상을 읽을 때면 소설적인 느낌보다는 영화적인 느낌이 강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게 된다. 역시,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무대를 사이공으로 옮긴 이 소설은 밤이 그려지는 이미지처럼 폭력과 환락이 가득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 뉴스에서 접할 이야기,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볼 수 있음직한 내용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실종되고 또한 살해되는 필리핀이 떠오르는 것도, 가장 대대적으로 드러났던 필리핀 납치 살인사건이 함께 떠올려진다.

  볼수록 찐득찐득한 느낌이 가득한 이 소설은 경쾌하지 않다. 당연 살인과 음모와 배신이 판을 치는 내용이 진행이 되는데 이 상황에서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될까. 죽은 사람이 될까, 죽게 될 사람일까. 저자의 시선이 계속 바뀌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인물을 응원해볼까.

  등장인물들은 남성들이 압도적이다. 그리하여 이들 언어의 세계는 상당히 격하고 성적이다. 퇴폐적이며 부도덕한 언어가 시종일관 가득하다. 그들이 삶 역시 자신들의 언어가 내뱉는 방식으로 생활한다. 아니, 그들 생활에 맞는 언어를 구사한다.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정당한 거래와 윤리를 비켜내고 그들이 얻어 내는 것은 단순하게는 ‘돈’이겠지만 ‘돈’이란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을, 재화를 얻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투자하고 여기서 얻은 수익을 쾌락을 향유하는데 바친다. 낯선 사이공에서의 느낄 수 있는 쾌락을 천국이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쾌락을 위해 이러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쾌락의 방식엔 당연 술과 여자와 약물들이 빠지지 않는다. 기가막히게도 술과 약물의 등가는 그렇다치고 이것들과 등가되는 여자는 무어란 말인가. 좋게 해석하자면 그들에게는 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봐야 하나.

  그들은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천국에서 그들은 권태와 욕망, 허세와 거짓말의 언어 속에 파묻혀 있다. 그것밖에 할 게 없었고 그것만 하고 싶었고 뭐 그렇다.

  하지만 이들이 이 생활을 더 누릴 수 없는 것은 고리대금업자 기승의 실종이다. 천국에 살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기승의 실종은 이들을 천국에서 추방하도록 만든다. 부랴부랴 대수와 순철과 도식은 기승의 행방을 추적한다. 이 와중에 기승의 아내는 살해된 채 발견되고 도식은 용의자로 지목되어 수사를 받기에 이른다. 물증이 없어 풀려나지만 기이한 일은 계속된다. 베트남 여성 ‘린’이 한국행을 위해 도식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준비과정에서 기승과 순철 역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런 상황이 주어지고 이야기를 풀어 가려면 항상 예측가능한 전개가 있다. 믿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 아무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 공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패턴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똑똑하게 보여지는 그 부패한 경찰과 대사관들이 등장한다. 왜 이다지도 천국의 삶의 방식은 패턴이 정해져 있는 것인지. 네 명의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는데 이유가 없을 리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들도 조금은 익숙하다.


도식은 기승의 사업을 믿지 않았다. 기승이 말하는 달콤한 배당금보다는 기승과 순철 그리고 대수와 함께 사이공의 밤거리를 걷고 싶었을 뿐이었다. 도식은 투자의 대가로 기승과 대수와 순철을 얻었다. 그들과의 싱거운 농담, 즐거운 한때가 투자의 대가라고 도식은 생각했다.

기승과 대수, 순철 그리고 도식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식은 그들과 술을 마시며 서로의 공통점을 곱씹었다. 목표를 손쉽게 달성한 남자들. 한때는 건실했던 남자들. 목표를 이뤘지만 그 대가로 뭔가를 잃어버린 남자들. 그 뭔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미련한 남자들. 하지만 그 뭔가를 애타게 되찾으려 애쓰는 한심한 남자들.

한때는 건실했던, 하지만 지금은 미련하고 한심할 뿐인 남자들이 기승과 대수, 순철 그리고 자신이라 생각했다. p196~197

 

  익숙한 패턴이라 흥미 유발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항상, 누가 어떻게 죽게 되는지, 누가 왜 죽이는지, 이런 류의 소설에선 그것이 궁금해진다. 이 속에서 뒤통수를 때릴 인물들이 가늠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뿐이다. 거듭 배신자는 있고 부패하는 자는 있기 마련이니까.

  돈으로 얽혀 있던 이 네 명의 남자들 중 도식만이 살아남았다. 과연 그는 끝까지 살아남을까? 그리고 그에게 영주권취득을 위해 결혼을 제안한 ‘린’은 누구인가.

  무심히 넘기다 하나 시선이 모아지는 점이라면, 주무대인 사이공이다. 왜 사이공을 그렸을까. 우리에게 이런 류의 행태가 익숙한 곳은 필리핀이라서 건너뛴 것일까. 거기다 지금은 사라진 지명, 사이공. 베트남 여인이 한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도식에게 접근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는 그녀 ‘린’. 베트남, 과거 월남이라 불리던 이곳. 이곳에서 베트남인들을 학살하던 한국인. 무수한 라이따이한을 만들어낸 한국인. 지금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마치 ‘베트남 처녀 팝니다’같이 펄럭이는 플랜카드. 이 모든 것에 주체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한국인, 한국남성. 베트남 여성 ‘린’은 이러한 역사를 가진 한국에 대해, 남성에 대해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그렇담 그것은 복수일까 정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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