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정책
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 : 문제는 정책이다
일찍이 이 사회를 향해 “분노하라”고 외쳤던 스테판 에셀이 생각난다. 앞장서서 “분노”의 실천을 했고 그리고 “분노만으로는 안된다”며 대안을 제시했던 사상가의 목소리가 앞뒤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듯하다.
언젠가부터 내 온 몸에 깃든 이 분노의 메시지를 나도 모르게 조금씩 흘리고 있을 때면 이내 핀잔을 듣곤 했다. 가끔은 그러한 반응에 더욱 당혹스러울 때가 있었지만 ‘정치’라는 게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취향의 문제를 떠나 ‘금기’가 되는 것을 수없이 겪었다. 취향의 문제이거나 혹은 성격의 문제로 취급당한 정치이야기는 한편으론 ‘시비거는’의 단어와도 동일했다. 어느 틈에 ‘정치’라는 이야기가 이런 다양한 단어를 함축하면서도 절대적으로 하나만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을까. 정치이야기는 곧 박근혜 비판으로 인식되는 현장은 세대가 다를 때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젊은 세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정말로 취향의 공동체 속에 진입하지 않는 이상 어느 자리에서나 정치 이야기는 불편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당연할 듯도 하다. 그 이야기의 정점은 대통령으로 이어지게 되어있으니까. 그렇다면 정치이야기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으로 귀결되는 이야기가 불편한 것이었을까.
정치는 한 인간에 대한 호불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안녕을 위한 이야기라고 누누이 변명, 해명, 증명, 반박해야 하는 일은 참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정치는 정책이며 제대로 된 ‘정책’에 대한 나의 욕구가 분노조절장애자로 성격이상자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차라리 속시원히 “그래 나 성격 더럽다!”라고 외쳤어야 했는데. 생각해보니 다 내가 잘못했다. 더 열내지 못한 것도 지친 것도.
우리가 세계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대다수는 무력감을 느끼고 체념하며 운명론자가 된다. 모든 희망을 잃고 정치에 무관심해지거나 울분을 터뜨리는 것이다. 세계와 유럽에 종속됨으로써 빚어지는 해악을 인식하는 혹자들은 그 종속에서 벗어나는 것, 즉 우리 프랑스를 탈세계화하고 탈유럽화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한다. 이것은 우리가 모면했다고 여기는 종속보다 고립과 폐쇄가 더 큰 해악임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3
무력감. 체념. 오래도록 뼈에 깊이 새겨진 단어다. 원하지 않았음에도. “떠들어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라며 자기계발에나 힘쓰라던 사람들 속에서 떠들기만 하는 자괴감을 느꼈던 것도 이제 와서 후회가. 더 실컷 떠들 것을.
사회에서 인간은 “정책”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 담배값 인상 정책이 미치는 영향만 해도 정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그러니 정책은 정치와도 같다. 이것을 아는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 결정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선 특정한 이익집단이 주무르는 정책들이 횡행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맞닥뜨리고 있다.
스테판 에셀은 사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분노하라 외쳤고 더 깊은 이해와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또한 포기하지 말라고도 했다. 연대, 연대, 연대! 그의 외침에 동감한 많은 이들이 나서서 분노했고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분노하고 포기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역시 정책이다. 스테판 에셀은 이 책에서 정치를 사랑하기 위한 13가지 제안을 한다. 웰리빙정책, 불평등문제, 교육, 실업, 소비정책, 청소년정책, 문화예술 등등 필요한 개혁과 문제들을 규명하고 해야 할 이루어야 할 정책들에 대해 제시한다. 특히 웰리빙 정책은 “양과 타산과 소유의 헤게모니에 맞서 우리는 대규모의 삶의 질 정책”으로 물질적 측면이 좀더 부각되는 웰빙과는 다르다. 그의 제안들은 물론 유럽이라는 사회,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이라는 시기적인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큰 틀에서는 같은 맥락이고 소소한 것들 모두 우리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 특정한 국가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잘 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이끌어낸 온갖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고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제 우리 역시 “정책”에 대해 다시 환기해야 할 때다. 우리의 삶을 이끌 정책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것은 무엇인지. 여기, 스테판 에셀이 제안하는 정책들과 그것에 대한 메시지가 방향을 일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