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가 필요해


요슈타인 가아더,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


    “운명을 꿰뚫어 보려는 자는 운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철학을 이야기로 풀어 쓰는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설이다. <소피의 세계>가 그의 대표작이듯 이 책은 철학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최근작이 아니라 1990년대 <카드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소피의 세계>작가의 소설이라 하니 이야기가 흘러 철학의 문제로 가겠거니 생각하게끔 되지만 이 책이 <소피의 세계>보다 먼저 출간되었다. 명백히 선후관계를 따지면 이 책이 <소피의 세계>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거란다.

   이 소설의 큰 줄기는 열두 살 소년의 엄마 찾기 여정이다. 자아를 찾아 떠난 엄마를 한스는 아빠와 함께 노르웨이에서 아테네로 찾아 나선다. 이 머나먼 여정에서 한스가 만나게 되는 것은 무얼까. 열두 살 아이가 등장하는 것처럼 신나는 모험이 있다. 다만 여느 모험과는 다르다. 또한 이야기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흐르는, 판타지와 미스테리가 가득한 이야기다. 그래서 잠시 한눈을 팔면 옆길로 빠진다. 마냥 환상 속에 머물러 버릴 지도 모른다.

  아테네는 그리스 철학의 중심지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철학자들이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두 부자의 최종 목적지가 아테네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엄마를 찾으러 가는 여행이 철학여행이 되는 것은 철학으로 이끄는 이가 있다는 얘기다. 이 여행에서 한스의 아빠는 이 역할을 맡는다.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선 아이는 알지만 어른은 절대 알지 못하는,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을 보는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이것은 아이들이 보다 순수하고 정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어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아빠는 비록 한스가 혼자서 맞닥뜨리는 빵집이나 난쟁이들의 모습에 대해 알지 못하고 역시나 보지 못하지만, 한스에게 계속 질문을 제기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한스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철학자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얘야, 절대로 그렇지 않아. 우주에는 생명력이 넘치고 있어. 다만 우리는 우리뿐인지 그렇지 않은지 결코 알 수가 없는 거야. 은하는 마치 외로이 떨어진 섬들과 같거든.”

아버지에 대해 할 얘기가 많지만, 나는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걸 한 번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해사로서의 인생에 만족해서는 안 되었다. 내 생각에 아버지는 철학자로서 나라에서 봉급을 받았어야 했다. 아버지도 언젠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에는 별의별 장관이 다 있지. 그렇지만 철학 장관은 없어. 큰 나라들마저도 그런 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p27 


  한스가 낯선 환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일인 것처럼 이루어진다. 그가 만나는 난쟁이와 그의 안내, 빵집의 제빵사. 그로부터 건네받은 꼬마책. 지금의 열두 살이라면 이런 책보다는 그저 핸드폰을 들고서 여행을 했겠지만 한스는 수상한 빵집 제빵사 루트비히에게 받은 꼬마책을 읽는데 푹 빠진다. 루트비히가 건넨 롤빵에 있던 돋보기로 봐야만 읽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책, 꼬마책. 거기엔 1790년의 이야기, 카리브해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온 선원 프로데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52장의 카드, 이것은 프로데의 친구들이다. 환상의 섬인 만큼 이 신비로운 일이 가능했고 여기에 조커가 등장하여 흥미진진하게 한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중에 불쑥 불쑥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고 있나’와 같은 질문들이 튀어나와 머릿속을 비현실적이게 만들었다가도 현실적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가야, 널 이렇게 불러도 되겠지. 나는 여기 앉아서 내 인생 이야기를 적고 있고, 네가 언젠가 도르프에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너는 발데마르길의 빵 가게를 느릿느릿 지나가다가 금붕어가 든 유리 어항 앞에 멈춰 서겠지. 너는 네가 왜 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무지갯빛 레모네이드와 마법의 섬 이야기를 계속 이끌어가기 위해 도르프에 올 것임을 알고 있다.

    지금은 1946년 2월이고 나는 아직 젊다. p48 .


  아이가 그 먼 여정을 가는 바람은 4살 때 헤어진 엄마를 만나는 것이었으니만큼 엄마를 만나게 될까. 엄마는 자아실현을 위한 모델일을 잘 하고 지속적으로 하려 할까. 아빠는 여전한 철학적 질문을 쏟아낼까. 그리고, 오래전에 이야기로만 전해져 오는 한스의 할아버지는 어디에, 살아는 계실까. 수상한 빵집과 더불어 또한 불쑥 튀어나오는 난쟁이를 만나게 되는 한스의 여행은 꼬마책 속에 등장하는 환상의 섬과 오버랩되며 그 명확한 경계를 흐리지만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명확하다.


 우리는 놀라운 동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이 세상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천사나 화성인처럼 비정상적인 존재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그들에게 세상이 수수께끼로 보이지 않는 다른 데 있을 뿐이다. 나는 아주 다르게 느끼고 있다. 나는 세상이 놀라운 꿈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이 꿈이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고 있었다. p191


  이 환상의 세계가 52장의 카드가, 조커가 흐릿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는 선에서 이야기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갇힌, 익숙한 선에서만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에. 물론 그것을 질서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너머를, 본질을 본다면 더 깊은 깨달음과 더불어 더 넓은 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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