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커리어우먼의 스페인 섬 정착기


안나 니콜라스, 

뽀까 뽀끄 - 마요르까로 떠난 한 가족의 행복한 스페인 이야기


         뽀까 뽀그.

         스페인 마요르까 섬의 관용어다.  ‘조금씩 조금씩’

  이 책의 분류는 여행기다. 작가의 마요르까의 생활이 여행이라면 여행기라고 볼 수 있긴 하겠다. 작가는 열정적인 커리어 우먼이다. 경력을 보건대 일중독자다. 여러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기네스 세계기록의 국제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녀가 기획한 다큐는BBC에서 방영되었다. 런던에서 부유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PR회사의 경영자이기도 하다. 런던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바쁜 이 열정적인 작가 안나는 쉴 틈이 없이 일하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매일 밤마다 뉴스를 보고 잡지를 뒤적이며.

  일중독자가, 열정적인 커리어 우먼이 삶에서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느낄 때, 다른 일들에 마음이 갈 때는 언제일까. 안나에게는 그런 일은 없을 듯해 보였는데 복잡한 도시 런던을 떠나 스페인의 마요르까 섬으로 정착하는 전환을 꾀한다.

  처음 시작은 그저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 마요르까 섬으로 푸욱 쉬고 올 목적으로 휴가를 떠났건만 그때만 해도 그저 특별하게 자신을 끌어당기는 일없는 섬이었을 뿐이지만 까닥없이 낡은 집에 끌리어 휴가를 떠난 곳에서 집을 사 버렸다. 단순히 낡은 집도 아니라 바닥도 갈라지고 지붕도 무너진 그런 집을. 더구나 자신의 직장은 런던인데도.

  이렇게 무턱댄 부동산 투자(?)로 안나의 삶이 바뀐다. 그때부터 안나는 런던과 마요르까를 오가는 생활을 시작한다. 더구나 안나가 비행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런 암울함에도 비행 공포 퇴치 안내서를 붙들고서 런던이라는 직장을 비행 출근하는, 스페인 마요르까 섬으로 비행퇴근하는 삶. 사실 한편으론 아, 멋지다 싶다. 하지만 이것이 일상이라고 한다면 멋짐보다는 무딤이 일상화된 삶의 또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도 같다.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차이가 있을 것이니 안나는, 이 두 지역을 오가는 생활을 안정적으로 잘 해냈다. 그리고 어디에 마음이 더 가느냐에 따라 안나의 생활이 정리가 될 터인데 안나는 마요르까 섬에 정착하는 것을 택했다. 이렇게 두 지역을 오가는 동안 그녀가 행하던 일에 대해서나 삶에 대해서나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그녀에게 힘든 일은 스페인에서의 삶이었을 것이다. 이미 그녀의 런던 직장 생활은 익숙하기도 하고 원체 잘 하는 것이었기에.

  반면 스페인 마요르까는 집을 꾸미는 일도 지역에 적응하는 일도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다. 새로 시작하면서 그것에 더욱 끌리게 될지 반대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은 그녀의 이 스페인 마요르까 섬에 마음이 끌려 붙박이가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마요르까 섬이 이 도시녀의 마음을 어떻게 휘감았는지가 소설처럼 쓰여져 있다. 마요르까의 멋진 풍광이 더해진 사진이 더해지면 이 이야기는 한편의 소설처럼 재밌게 낯선 곳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하물며 이 책은 마치 소설이기라도 하듯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까지 있다.

  당연히 예상가능하지만 런던에서의 그녀의 일상은 익히 알듯이 정신없고 딱히 즐겁지 않은 사건과 일들의 연속이다. 특히나 고객을 상대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진상고객이라도 만날라치면…. 누구나 예상하듯 직장인의 삶, 바쁜 도시의 삶이 펼쳐진다. 그러나 마요르까에서의 삶이란 또 한편 예상할 수 있기도 하듯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여유가 넘쳐난다. 또한 가족들이 함께 하고. 이웃들과 함께 재밌고 즐거운 일상을 맛본다. 왜냐면 마요르까에서는 언제나 문제가 없으니까. 다만 당신에게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다채롭게 전개되어 영국인들이 스페인인들과 이웃으로 얽혀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인종을 떠나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란 낯설고 흥미로운 일들이니까.

  안나는 점점 런던에서의 생활은 감옥 안에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그녀는 도시 생활의 부속품처럼 런던 생활이 여겨지고 “별을 가득 품은 부드러운 하늘과 노래하는 매미, 미풍에 실려 다니는 재스민 향기”를 그리워한다.

  안나는 마요르까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완전히 정지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점점 생각하게 되는 일들. 뽀까 뽀끄는 조금씩 조금씩이란 말. 그렇게 그녀는 뽀까 뽀끄 마요르까에 끌려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의 정말의 뜻을 “뜻하는 바는 당신의 목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망할 희망 따위는 갖지 말라”라고 말한다. 혼란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를 죄기 위한 반어법이었나 보다. 애써 동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생의 고락을 의연히 받아들이기 위한 생각까지 하면서.

  하지만 고뇌의 시간이 긴 만큼 생각 역시도 깊어진다. 안나는 이성의 끝까지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결국 마요르까의 삶에 편안함을 얻어 간다. 시간을 버리는 일에 편안함을 느껴가는 것이다. 안달복달하지 않고 사물을 사람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며 지난 삶에서는 왜 그리 안달했던가를 생각해본다.

  

런던에서 커피 마시는 행동은 강박적이다. 마요르까 산골 마을에서 주문하는 커피는 블랙이나 밀크커피, 혹은 아이스커피, 아니면 솔로라고 부르는 에스프레소가 고작이다. 그러나 런던에서는 101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그리고 참나 원, 나는 내가 마시는 커피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썼던가. 나는 때때로 톨 사이즈 트리플 샷 카푸치노 엑스트라 핫 또는 쇼트 사이즈 더블 샷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거나 그란데 사이즈 디캡 라테에 거품을 추가한 것 또는 해즐넛과 바닐라 아이스 모카에 크림을 얹은 것을 마셨다. 정말이지 내가 무엇을 먹었던 것일까? 이제 나는 차 마시는 것이 훨씬 좋다. 덕분에 몸도 더 편안하고 돈도 아낄 수 있다. p162


  이토록 사소한 것에서부터 변화한 안나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깊은 시간 동안 고뇌를 겪어 온 그녀의 이 심심한 변화가 좋게 보이는 것은 이 삶이 동경이 되기 때문이겠지. 이제 그녀는 마요르까에서 완전히 매혹되었고 자신에 대한 강박도 날려버렸다.

  

이곳 생활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 자신을 향해 웃을 수 있는 것. 위험한 자존의식이나 그라비따스, 진지함을 가진 사람은 다음 비행기로 곧장 런던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p239 


  어쩌면 안나의 런던에서의 커리어 우먼의 삶을 동경할 사람도 스페인의 아름다운 섬에서의 여유와 행복이 넘치는 삶을 동경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경험한 사람이 가지는 행복의 의미가 있겠지. 오랜 비행 시간만큼이나 양쪽의 생활속에서 비행하며 고뇌하는 모습도 마요르까의 삶에 정착하는 모습도 진지함과 유머가 잘 버무려져 있다. 안나처럼 스페인 마요르까 섬에서 낡은 집을 살 형편도 런던에서 바쁜 커리어 우먼의 일상을 보내지도 못하는 나는 삶의 고민만은 계속한다. 나도 비행을 접고 어디든 무엇에든 정착해야 할 때가 오겠지. 그때까진 곡예 가득한 비행기에 놓여 있을 수밖에.

  비행을 끝난 안나가 부정적으로 되뇌었던 ‘뽀까 뽀끄’의 의미를 마지막에 가서야 수정한다. 뽀까 뽀끄! 나의 비행기도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이 곧 다가오겠지!


 마요르까에서 나는 인내의 기술을 배웠다. 모험을 즐기는 우리의 철물상, 전기 기술자, 전화 수리공, 커튼 가게 주인 등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 느닷없이 나타나 마요르까의 진리 ‘뽀까 뽀끄’에 대한 믿음을 일깨워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다리는 자는 항상 좋은 것을 차지한다.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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