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방향


 김남희・쓰지 신이치,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그곳에서 느끼는 감흥의 기록이다. 평화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통해 만나게 된 한국의 여행작가 김남희와 일본의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는 국적과 성별과 나이를 떠난 교류를 통해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우정의 한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이 관심을 품고 있는 주제에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이기도 하다. 함께, 동일한 시간의 여행이 아니라 동일한 장소에 대한 기억이 흐르는 기록이다. 두 사람은 부탄과 일본의 홋카이도와 나라, 한국의 강원도와 안동과 제주도와 지리산을 여행했고 그곳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나눈다. 같은 곳에서 느끼는 두 사람의 생각의 차이가 질문들이 담겨 있다.

  쓰지 신이치는 슬로 라이프 개념을 제안한 학자로서 이들 두 사람의 여행에선 책제목처럼 삶의 속도와 행복의 방향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상기시킨다. 여행을 떠나는 발걸음처럼 조용히 뒤따르는 행복이란 의미는 여행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수많은 질문을 통과해 더욱 확고히 다져진다. 이들의 지향점이 그들의 생애에서 드러나기에 어쩌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상가능하기도 하지만 여행 속에서 맞닥뜨리는 생각들의 잘 정리되어 나아가는 풍경을 글로써 만나는 감흥도 새롭다. 여기에 두 사람의 글의 차이가 확연하기에 스승과 제자의 문답같은 느낌도 더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에 관한 정의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다.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십 년간 세계를 떠돌며 살아온 내게 여행은 늘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내가 쌓아온 성 바깥으로 나가 그 성을 균열시키고 흔드는 만남에 나를 내맡기기. 그런 만남을 통해 새롭고 긍정적인 기운을 내 안에 가득 채우기. 그렇게 돌아와 이곳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게 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자 바람이었다.p8


  김남희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견고한 성을 굳이 균열시키려는 노력은 더욱 더 확고한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느껴진다. 갇혀 있지 않고 수용하면서 바람직한 생각들로 내 성을 더욱 견고히 만들어가는 것. 그래서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값을 몽땅 빼내 여행을 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여행을 통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쓰지 신이치의 권유로 가게 된 부탄에서부터 행복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 작은 나라이며 물자가 풍부하지 않지만 행복한 나라라고 거침없이 꼽는 쓰지 신이치의 말에 그 행복의 느낌을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래 얼마나?”라는 꼬인 심정으로 부탄을 향했다는 작가. 마치 반대의 반대를 하듯 계속 부탄의 행복에 대해 의문을 거는 작가의 심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그 ‘선택의 자유’라는 말을 별로 믿지 않아. 우리가 정말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고 있을까? 도대체 뭘 선택할 수 있는 거지?”

“저한테 행복이란 일상의 작은 것들로 이루어지는 마음의 평화와 만족 같은 거예요. 오늘 내가 뭘 입을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 기분이나 날씨에 따라 입을 옷을 고르는 일에서도 행복을 느끼니까요. 부탄은 그런 기본적인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거잖아요.”

“규제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아. 규제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고. 무엇을 규제하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행복해지는데 옷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지?”

“그래도 전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사고가 싫어요.”

“모든 사회는 집단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야. 개발이나 성장이라는 이름 안에서만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고.” p29


  선택의 자유를 중요시 여기던 작가는 부탄을 여행하고 그곳의 삶을 체험하면서 소비하는 삶에 대해 일과 놀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도. 물질적 성공이 아니라 나눔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관계맺음의 기술 또한 행복한 조건이라 생각해본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자연과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점점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점점 신이치 선생님의 말들과 겹쳐간다.

  여행을 하게 되면 느끼게 되는, 아니 일상을 살다 보면 느끼게 되는 회의감들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들을 만나다 보면 전환적인 생각으로 전개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직접적인 체험이 아니어도 타인의 여행의 기록을 통해 이러한 마음을, 느낌을 전달받게 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우리 안에 일상이라는 평범함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몇 년 전부터 휩쓸었던 슬로 라이프의 삶은 우리나라에 와서는 그저 걷기와 웰빙 먹거리 열풍으로 이어진 느낌이었다. 이것이 함께, 다같이 살아가기가 전제된 삶의 여유와 행복의 다른 이름일 터인데 빨리빨리 문화가 슬로 라이프의 삶을 수용하는 방식은 자본을 벗어나지 못한 방식일까 생각했었다. 소비와 소유의 문화가 여전한 삶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다. 나 혼자만 그렇지 않게 살아가기라 애쓴다 한들, 환경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가능할 리 없다.

  삶의 속도와 행복의 방향이 모두에게 같을 필요가 없음에도 한국적 삶은 그 라인을 너무나 친절하게 제시하여 주는 까닭에 이 라인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할 때면 힘이 든다. 그렇다고 그 방향대로 산다는 것 또한 지독한 허기를 안겨 준다. 두 작가들이 여행한 곳은 다수가 권위가 제시한 라인에 비켜가 있는 삶의 모습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은 소비와 소유에서 비켜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가치를 품고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행복의 방향을 정립하기까지 그들에게도 흔들림과 실패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삶은 견고해졌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방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