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할 인간들


프란체스코 다다모, 난 두렵지 않아요-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 이야기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마을에 들어서서 차문을 서서히 내린다. 언덕을 오르는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간다. 네 다섯 번의 총성이 울렸고 빗속에서 열세살 아이의 핏물이 흘러간다.

  책 속에서 묘사된 이크발 마시흐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크발 마시흐에 관한 이야기에서 놀라는 점은 그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한 일보다 열세살 아이를 죽여버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범인은 모르지만 알 수 있는 이 일은 1995년 부활절에 파키스탄에서 일어났다. 이 후로 파키스탄의 아동노동에 대한 관심과 변화가 일었다.

  이 책은 노동운동가가 된 소년 이크발의 이야기다. 이크발의 생애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 이크발을 회상하는 소녀를 내세운 동화다. 그렇기에 이 동화의 문체는 간결하고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솔직하다. 열세 살 이크발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있지는 않지만 조용하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동화 특유의 감성으로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이크발이 어린 소년이고 이 책이 동화라서인지 이야기의 형식이 잔잔하고 동화적으로 흐른다. 이크발의 죽음 장면 역시도 생생한 묘사가 아니라 이크발과 함께 지냈던 한 소녀에게 또다른 소녀가 이크발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로 대신한다. 같은 일을 겪은 아이가 자신들을 도와주고 또한 수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모습을 아이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이크발은 네 살에 가족의 빚 때문에 카펫 공장에 팔려간다. 하루 1루피(25원)의 임금에 10시간 이상을 일했다. 이 공장엔 이크발 뿐만 아니라 많은 어린이들이 빚에 팔려와 하루하루 빚을 갚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며 열악한 환경에서, 학대를 받으며 일을 한다. 이크발은 함께 일하는 아이들에게는 달라 보였고 결국 공장을 탈출한다. 탈출을 한 후 이크발은 아동노동문제를 위해 일하는 운동가들의 연설을 듣고 불법 고용주를 신고하지만 오히려 공장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당연히 예상가능한 유착관계가 카펫 공장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퍼져 있던 것이다.


카펫 공장 주인들은 힘이 있어. 벽돌 가마 주인들도 그렇고. 고리대금업자들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 경찰은 그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너희들도 알잖니. 판사들은 못 본 척하려고 해.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온갖 협박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어. p161


  다시 이크발은 탈출한다. 그곳을 벗어나지만 이크발은 공장을 탈출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 어린 소년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열악한 아동노동현장을 알리는 노동운동가가 된다. 아이들을 착취하는 이러한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이어지며 아이들은 온갖 학대에 시달리며 병에 걸린 채 노예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고 가진자들이 권력을 쥔 이들이 그들의 힘을 과시하는 상황에서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하겠지만 이크발은 열악한 공장들의 불법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아이들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다음 몇 달 동안 이크발은 미성년자를 착취하는 열한 개의 다른 공장들 문을 닫게 하고 이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해방시키는 데 공헌했다. 전선 본부는 고아원으로 변했다. 모두 같은 이야기, 비슷한 사연이었다. 시골 어딘가에 있는 멀고 먼 마을, 빼앗긴 수확물, 고리대금업자에게 꾼 돈, 노예 생활.

 “우리가 공격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고리대금업자들이에요.” 이크발이 말했다. “모든 게 다 그자들 때문이라고요.” p164


  이러한 이크발의 노력은 아니러니하게도 파키스탄보다 전세계를 울린다. 많은 이들이 이크발의 행동에 놀라워하고 응원을 보내며 또한 학대받는 아이들의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오로지 이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들만 다른 생각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야 할 것을 정당하게 가지는데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에 해가 되는 것만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아이에 대한 가증스런 배려도 없는 이들은 해야 하는 일보다 해서는 안되는 일을 지속하는데 늘 사로잡혀 있다. 그렇게 카펫 마피아로 불리는 카펫 공장주들은 결국 열세살 어린아이의 활동에 두려움을 느끼고 아이를 죽인다.

  이 일을 1995년 파키스탄이라며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을 두어 보지만 그럼에도 생각할수록 할말을 잃게 만든다. 이크발의 활동 덕분에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증가하였고 아동 해방 운동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2016년의 지금도 완전히 뿌리뽑혀지진 않았지만 전세계 아동착취 상황에 대한 고발과 변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동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인등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노동착취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만 해도 수십년 노동착취를 일삼는 이들의 사건 소식이 등장하고 있다.

  나쁜 일이라는 것을 몰라서 행한 것이 아니라 나쁜 일임을 알면서도 내 이익에만 환장한 사람들이 벌이는 인간에 대한 착취. 인간을 소유물로만 도구로만 보는 이들의 결정은 문제를 일으키는 자신들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이크발의 살해다. 이크발이 사라진다고 해서 자신들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해결되는 것도 아님에도 그들의 결정은 자신들에게 귀찮은 것을 파괴하는 것이 당연하듯 군다. 파키스탄에서도 범인을 알지만 ‘괴한’으로 남겨두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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