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예방의 날에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에 대한민국의 자살예방책은 어디쯤에 있을까. 아니, 세계 1위의 자살공화국인 나라로서 하고 있는 것과 해야 할 정책이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자살예방의 날이 제정된 것도 인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이 날의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건 없어 보인다. 자살의 이유는 우울증이기에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울증을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기사들만 넘치게 본 것 같다.

  우울증이 문제라면 왜 유독 한국인들이 이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 우울증이 자살로 연결되는가. 자살의 이유 역시 불행한 가족의 이유 역시 제각각이겠지만 어느 순간 대한민국의 ‘자살’의 나라라는 것은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 나라, 죽기 좋은 나라라는 건 아닌가. 그렇게 되어 버리는 요소가 곳곳에 채이고 있는 자살의 나라.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라고 백만번 외친다 한들!


  여기 자살을 결심한 여자가 있다. 하야마 아마리. 그녀의 결심은 스물 아홉, 생일에 이루어졌다.


스물아홉 번째 생일, 이제 혼자만의 파티를 시작한다. 혼자인 건 괜찮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혼자였으니까. 그래, 괜찮다. p18

나는 스물아홉이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나는 혼자다. 나는 취미도, 특기도 없다. 나는 매일 벌벌 떨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할 만큼만 벌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이렇게도 형편없는 인간이었나? 처음엔 물이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끓는 물에 들어온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 것이다. p21


  그녀는 파견사원이고 애인에겐 버림받았고 뚱뚱하고 못생겼고 외톨이다. 그녀는 생일날 떨어진 딸기케이크를 먹으려 하다가 자신의 이 모습을 더욱 자각하게 된다. 그순간 그녀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용기도 없다. 마침 텔레비전에는 라스베이거스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녀는 라스베이커스의 풍경에 매료되고 만다. 죽기로 결심했기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던 걸까.


너덜너덜한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는 나의 현실과 라스베이거스 사이에는 영겁의 간격이 있어 결코 닿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숨 쉬는 것과 똑같은 공기로 호흡할 수 있는 곳에 저런 세상이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암울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 날마다 행복한 축제가 펼쳐지는 세계, 그곳은 지상낙원 그 자체였다. p44


  그 순간 그녀는 삶을, 죽음을 유예한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에 죽기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로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기로. 그래서 그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죽기 위한 계획을 실행한다. 무력하던 생일날 그녀에겐 목표가 생겼고 용기를 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돈이었으니,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쓴다.

  일본인인 그녀는 파견사원이었는데 돈을 벌기 위해 그녀는 투잡을 띈다. 유흥가에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파견사원이기에 퇴근시간이 이르다는 점이었다. 파견사원이란 일종의 비정규직과도 같은데, 한국이라면 그게 가능할까.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엄수되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한국의 직장문화는 정말…. 한국의 퇴근 시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눈치의 시간이다.

  외모에 자신도 없던 그녀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선택한 또다른 일이 유흥가의 호스티스라는 점이 놀랍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행동력이다. 이 일과 누드모델일도 하며 살도 빼고 점점 자신감을 갖는다고 해야 하나. 또한, 우연과 운들이 따라오는 것도 같았다.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p86 


  정말 그런듯이 그녀는 두 일을 하는 과정에서 외톨이라는 기분을 떨치고 새롭게 관계를 맺는 친구들도 생긴다. 그녀의 처절한 노력들이 치열한 그 기간이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한’ 결심이라는 걸 그녀는 잊지 않았고 드디어 서른번째 생일을 앞두고 라스베이거스 비행기에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을 베팅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그녀의 20대도 끝나버렸지만, 그녀는 잠에서 깨어 제 손에 쥐어진 5달러 지폐를 보며 뭉클해진다. 그리고 다시 살기로 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왔을 이 5달러짜리 지폐가 갑자기 나를 뭉클하게 했다. 1년이라는 치열한 시간을 환전해서 여기까지 날아와 인생을 건 도박 끝에 5달러를 번 것이다. ‘……그래, 이긴 거야. 달랑 5달러지만 난 이긴 거야!’ p224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고 한다. 일본의 실화수기로 2010년 출간됐다. 하지만 저자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가명인 ‘아마리アマリ’는 ‘나머지・여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죽음을 결심하고 죽음을 1년 유예했다. 그 기간 동안 그녀는 죽음을 위해 계획했던 일들을 목표로 삼으며 죽을 힘을 다해 살았고, 그리고 그녀는 변했다.  


삶의 목적을 알고 있는 미나코는 방향을 잃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발걸음이 너무 더디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눈앞의 목표는 너무도 선명하지만 삶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 이후의 시간을 상상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인생이란 바다는 목적이나 목표 하나만으로는 불완전한 항해를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신대륙을 찾아가는 범선은 타륜으로써 방향을 잡지만, 돛과 노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결국 미나코와 나는 각각 하나씩만 가지고 있는 셈이다. p146


  아마리의 실화를 읽다 보면 그녀의 인생은 판타스틱하다. 그 1년의 간극이 너무 크기도 하지만 현재의 그녀는 훨씬 더 변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 개인의 삶이 갑자기 남달리 느껴지지 않는 건, 그녀가 진정 죽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그녀는 살고 싶은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었고 살고 싶은 이유를 찾은 것이다. 죽고 싶은 이유가 아니라 굳이 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죽고 싶다’라고 하지만 그것은 살고 싶다, 간절하게 살고 싶다는 다른 말이다.

  그녀의 얘기는 죽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만 뺀다면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에 가기 위한 청춘의 열정에 대한 기록으로도 읽혀진다. 치열하고 힘들었던 그녀의 날들이 잔잔하게 읽혀지는 것은 역시나 ‘실화’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삶에서 ‘결심’만 ‘생각’만 바꾼다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해 응원을 하면서도 약간은 허무해진다.

  지금 이 순간도 살기보다는 죽음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자살이 잠시의 힘겨움에 의한 충동이 아니라면 , 지속적인 상태에 의한 결정이라면 그들에게 그 상태를 지속하게 만드는 수많은 계기들은 도대체 어떤 ‘계기’가 되어야 전환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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