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페미니즘은 수준이 떨어지는가


   철학이 뭐 별건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자세이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좀더 비중을 두는 격언같은 것이라 말하면 안되는가? 철학자라고 철학을 공부한 이들만의 언어로 개념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것만이 철학인가? 그것만이 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논의되어야 할 높은 수준인가.


  “페미니즘은 수준이 떨어진다”


    이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었을 때 사실 나도 그랬다. 이 책은 너무 쉬운데라고. 그래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성평등지수가 높은 국가인 스웨덴에서 이 책이 성평등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한 칼럼니스트가 “페미니즘의 기치를 교육받고 자란 스웨덴 고등학생에게 이 책의 내용은 좀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라고 했다는데 딱, 내 심경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난 생각하기를, 좀더 강하고 좀더 처절한 성차별적 상황을 보여주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나보다. 어쩌면 조금 더 포장된 말로 감싼 책을 원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으로 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얼만큼 자리잡을 수 있을까 하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것보다 이론적인 말의 향연을 더 기다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수준이 떨어진다”라는 한 철학자의 기사를 접하면서 내 생각이 짧았다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됐다. 페미니즘에 관한 한, 가장 쉬운 말로 해도 모자라기에 이 책만큼 적격인 것은 없구나라고.

  한편으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철학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그것은 삶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그러다 또 생각한다. 왜 페미니즘이 ‘여성’을 위한 여성적 사고라고만 생각하는 건가. 최근 급격히 증가된 혐오논쟁과 더불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또한 더욱 강건해지고 공고화되는 듯하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늘 있어 왔지만. 아마도 이 부정적 인식의 전제에는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가 ‘여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치마만다도 거듭 이야기하듯이 페미니스트는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모든 성별’이지 결코 ‘여성만’이 아니다.

  아마도 여기에서부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강신주는 “페미니즘은 여성적인 입장을 다루나, 아직 인간 보편까지는 수준이 안 올라갔다. 그래서 항상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이해하는데 왜 이리 어렵게 느껴질까. 짧은 지식으로, 아니 짧은 지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가, 그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 보편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내 이해가 일찌감치 철학적이지 못했거나 한없이 형편없거나 한 모양이다.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우리가 젠더에 따른 기대의 무게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요? 각자의 진정한 자아로 산다면,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p37~39


  오히려 강신주 자신이 페미니즘을 폄하하기 위해 여성성을 더욱 강조하며 제한하는 듯하다. 기사 한 줄로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좀더 알아봐야지 하다가 참 마음이 가라앉는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지만 그의 철학은, 그의 책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의 강의를 들었다는 사람의 트윗글, 교복은 입은 여학생에게 "담요 왜 둘러? 그런거 두르면 안이 궁금하잖아. 저 외국엔 성범죄 하나도 안 일어나. 다 벗고 다니거든.“

  저 말이야말로 나온 맥락을 따진다 해도 부정할 수 없이 강신주라는 철학자가 가진 기본 인식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그러니 이 말은 페미니즘 발언과 연계가 되면서 그가 말한 수준낮은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은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주장이라기보다 오히려 ‘남성’적 우월주의에 가득찬 시선이 담긴 의식의 표출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도대체 여성에게 참정권이 20세기에 들어온 것과 인간을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발단이 된 그의 새로운 저서 철학 vs 철학을 읽어보지 않았다.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고픈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철학’에 대해 가지는 그의 입장이 허울가득한 텍스트적인 지식의 자랑이었던가. 삶의 의미와는 무관한. 그가 말하는 인문주의 시선이라는 것은, 그토록 편협적이었던가.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p43


  한편으로는 강신주의 말에 동의도 된다. 페미니즘은 수준 낮은 것이다. 그럴 만도 하지. 페미니즘은 기본이니까.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대한 인식이니까. 그래서 이것은 기본 중에 기본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니까. 밥을 먹고 어떤 커피를 마실까를 생각하며 커피가게를 찾아가는가를 고려하는 문제가 아니니까.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가장 낮은 욕구의 문제이니까. 낮을 수밖에.


내가 남자와 동행하여 나이지리아 식당에 들어서면, 웨이터들은 매번 남자에게만 이나를 건네고 나는 무시합니다. 그 웨이터들의 태도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사회의 산물일 뿐이고, 나도 그들이 일부러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님을 알지만, 무언가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들이 나를 무시할 때마다 나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입니다. 속이 상합니다. 그들에게 나도 남자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나도 똑같은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저 사소한 일이지만, 때로는 사소한 일이 가장 아픈 법입니다. p22~23

 

  사소한 일이 가장 아프다. 그렇다. 전문가, 학계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난 그들에 대해 전혀 생각 안 한다. 일고의 가치가 없다. 50년 지나면 나만 남고, 그들은 아무도 안 남을 텐데”라고 말하는 한 철학가의 이 자만에 내 자존심은 상처입었다. 그의 철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는 건가. 나는 생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그는 내 생존을 한없이 비웃고 있다. 저와 다른 수준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 안 안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p44


나는 페미니스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해, 우리는 더 잘 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p52


  오우! 응고지와의 말을 듣다보면 어떤 철학자는 반드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 듯하다. 그리고 야심한 밤에 난 분노했다. 하지만 나 역시 반성하지 않겠다.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더해 내게는 희망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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