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니 맘이야


오구마 에이지 저, 사회를 바꾸려면

  저자 오구마 에이지는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문학자라고 한다. 저자의 <사회를 바꾸려면>은 일본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갖는 사회문제에 주목하는 책이다. 이 책 역시도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과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인들도 사회를 바꾸고 싶은 갈망이 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일본인들이 책도 많이 읽는 모양이고. 많은 이들이 주목한 책, 그리고 영향력 있는 학자가 말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방법은 무얼까.

  사회를 바꾸려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사회에 ‘바뀌어야 할 요인’이 있다는 말과 같다. 즉 지금 현재 처한 상황이 문제를 안고 있고 보다 나은 사회를 갈망하는 욕구가 있다는 말이다. 일본 사회는 왜 이토록 변화를 갈망하는지, 변화에 대한 갈망이 한국사회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영향력있고 이 책이 인기있다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재미있고 쉽게 쓰여진 글이다. 그래서 이해가 빠르게 되고,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감정이입도 잘 된다. 선동기도 다분하고.

  총8장으로 나누어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먼저 “제1장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소제목에선 현재 일본 사회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정치, 경제의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사실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본은 고용, 교육, 사회보장 등의 여러 부분에서 한계에 이르렀다. 특히나 일본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심각한 나라로 손꼽힌다. 이런 문제들은 산업이 탈공업화로 변화하는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원인이 크다. 심각한 경제상황으로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이에 따라 사람들이 소외감이 증가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현재의 상황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제2장 사회운동의 변천”에선 선진국의 사회운동의 형태를 살펴보고 있다. 공업사회 초기에는 노동운동 형태가 주를 이루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학생운동, 여성해방운동, 소수자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사회운동은 사회를 바꾸는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증가할수록 연대는 옅어져 간다. 탈공업화 사회 불안정한 사회는 이처럼 연대의 부족이 낳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유’를 누리면서 연대 의식이 옅어져 ‘우리’라는 생각을 갖지 못하며, 자연히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탈공업화 사회에서는 가족이나 정치 또한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해지는데, 운동 또한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p50 


  제3장에선 “민주주의란?” 제목으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시민 전원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체제였고 현대는 대의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왜일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이다. 현대의 투표로 대표를 뽑는 것이기에 다른 정치행위, 특히 데모에 대해 소용없음, 부정적 의견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소속감, 함께한다는 것 집단의식의 중요성을 말한다. 통합력이 강력한 사회에 소속되어 있으면 자살이 줄어든다는 뒤르켐의 실증 내용을 거론하며 저자가 말하고픈 바는 이것이다.

 

데모에는 왜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는 걸까? 설명 10만 명의 데모대가 모였을지라도 “저들은 별스러운 일부 사람들일 뿐이야.”, “비례대표로 그저 한 사람 당선시킬 정도의 숫자에 불과해.”라고 형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설령 소수일지라도 “저 사람들로 우리 사회의 의견이 대변된다고 봐.”, “저기에 내가 느끼는 분노심도 대표되고 있어.”라고 인식될 때에는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현저히 다르다. 책임 있는 정책대안을 내놓고 있는가 아닌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p72


  제4장에선 “근대 자유민주주의와 그 한계”를 다룬다. 시대마다 사상이 있었고 기술의 발전은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경제자유주의 등 그 시대의 사조가 변화하며 흘러 왔고 최근에는 자유민주주의가 대세인 듯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오일쇼크,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기술이라는 것은 그것을 쓰는 발상과 사회기반이 없으면, 사회를 바꾸는 힘이 없다. 다만 일단 그것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기술을 손에 넣은 사람의 발상이 바뀌고, 사회를 바꿔나가게 된다. p121


새로운 발상이 등장하는 시대는 대체로 불행한 시대이다. 인간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때가 행복한 경우가 많다. p124~125


  하지만 끊임없이 사회에는 새로운 발상이 나타나고 있다. 관건은 누가 그 ‘발상’을 주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대표’에 대한 주체가 누구인지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변화해 가는 사회에서, 사회구조에서 ‘우리’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있고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5장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사색”은 대의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상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화와 참여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선거만으로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권을 잡고 정책을 선언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왜 그런가.


오늘날의 사회는 어딘가에 중앙제어실이 있어서 거기를 점령하면 사회 전체를 조작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이 법률이 바뀌면 이렇게 된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만, ‘자유’와 재귀성의 증대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설사 효과가 곧바로 나오지 않는다 해도 의회와 지역에서, 행정과 운동을 통해서, 즉 사회의 모든 곳에서 발상과 행동과 관계를 바꿔나가 그것이 연동해가며 사회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p252


  제6장 “일본 사회문제의 상징, 원자력발전”은 일본 사회운동의 주된 의제로 확산된 후쿠시마 원전 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본에서 원전 운동이 확산된 이유와 그 상징성은 이것을 계기로 사회를 바꾸는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당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 그리고 그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것이 체화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사회는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제7장 “전후 일본의 사회운동”에서는 전후 일본 사회운동의 역사와 현대에 필요한 사회운동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해 기술한다. 저자는 사회운동이 어떤 이슈로든 대대적으로 공론화되는 계기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슈가 사회 속에서 구조적으로 쌓여 있던 불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경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사회에 대입해보면 이른바 “갑질”사건이나, 고위층의 기만적인 행위들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제8장 “사회를 바꾸려면”에서 결론을 내린다. 선거가 한창이기도 했고 그래서 대안이 선거뿐이었기도 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투표가 해답이다”하고 한국사회는 외쳤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선거만으로 정권을 바꿨다고 사회, 또는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한편으론 수긍이 되기도 한다. 선거를 통해 ‘희망’을 가졌다가 크게 변한 것을 느끼지 못할 때 ‘절망’하게 되고 이것은 ‘분노’와 ‘외면’으로 바뀌니까.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사회를 바꾼다”라는 것에 대해 100% 맞출 수가 없다.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이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누구나 공유하는 문제의식, 그것을 바꾸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 되지 않을까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공유하는 문제의식, 그것은 바로 ‘나는 무시당하고 있다’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공유된 문제의식을 발판삼아 “대화와 참가를 독려하며 사회구조를 바꿔 ‘우리’를 만드는 운동으로 연결”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운동의 방식 또한 다양하다. 거기엔 틀은 없으니까. 그저 사회를 바꾼다는데 부합하면 되는 것이다. 투표, 로비활동, 데모, NPO, 인터넷이나 신문 등 방식은 무한하고 다양하다.

  저자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필요한 일이고 그러므로 즐거운 일이 되도록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 꼭 있다. “필요없는 데요?” 혹은 “안 바꾸고 싶은데요”라고. 이에 대해 저자는 사회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바꾸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미 사회는 바뀌고 있다고, 피해랄 수 없노라고. 침묵하다 침몰하거나 대파국을 맞이하거나 그건 니 맘이라고.


 몸소 나서는 것, 활동을 벌이는 것, 타인과 함께 사회를 만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훌륭한 사회, 훌륭한 가족, 훌륭한 정치는 기다린다고, 그저 바꾼다고 나타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귀찮다, 이상론에 불과하다, 믿을 수 없다, 두렵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고, 이대로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줄곧 그렇게 지내기 바란다.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당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당신이 바뀌기 위해서는 당신이 나설 것. 낡아빠진 말 같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말의 의미가 새롭게 재활용되어야 할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p427~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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