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죽고 싶습니다



  오베는 쓸쓸한 남자다. 그 역시 노년의 외로움에 고리를 만든다. 59세가 노인이 맞긴 한가? 항상 함께 해 오던 그의 아내도 곁에 없다. 그리고 인생의 1/3을 보낸 직장에선 그의 나이의 절반쯤인 관리자들이 말한다. “이제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냐”라고.

  오베는 자신의 원칙이 있고 그를 충실히 지킨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베의 원칙을 ‘흑백’이라 칭한다.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인 아내가 죽고 직장에서도 잘린 오베. 외로움 더하기, 자신이 할 일이 정말없구나라고 느끼는 오베의 선택이 애잔하다.

  한국의 자살사망률은 여전히 세계최고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이 기록은 한두 해 세운 것이 아니다. 자살의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이다. 특별히 한국인들만 우울증에 잘 걸리는 기질이라도 된다는 말인지. 노년의 자살도 높다. 노년의 우울증엔 경제적 이와 더불어 외로움과 쓸쓸함이 큰 몫을 차지한다. 오베도 시간에 밀려 이 전철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닥뜨린다. 하지만, 인생 100세 시대 오베는 환갑도 되지 않았는데.

  오베는 오베는 친절할 수 있는 남자지만 친절한 ‘척’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친절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것을 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하나의 포장도 없이 단순하고, 직선적이고, 뻣뻣한 행태로 행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드러나는 모습에 질겁한다. 한국에서라면 웬 꼰대?라고 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베가 꼰대라고 불리면 억울할 듯하다. 오베가 가지는 삶의 철학은 확고하고 그것은 오베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니다. 부당한 것을 정의로 둔갑시키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항상 알고 있는 원칙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을 꼭 잡고 있다. 그래서 오베는 답답하게 보이고 다른 이들과 부딪치지만 이 사회에서 어떤 경우라도 잊지 않아야 할 최상의 원칙들이 인간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 오베가 융통성없고 고루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오히려 오베는 사람들이 ‘꺼려’ 하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편견없는 사람이다. 다만, 오베는 표현력만을 ‘좀 더’ 길러야 한다.


아마 그녀에게 운명이란 ‘무언가‘였을 텐데, 그건 오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베에게 운명이란 ’누군가‘였다. p103 


  ‘누군가’는 오베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거침없이 폭력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린치당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린치를 거두어 가는 것고 ‘누군가’인 것이다. 오베는 ‘뒤치다꺼리’를 남겨주는 이웃 사람들오 인해 ‘어쩔 수 없이’ 그의 아내 곁으로 가는 것을 미룰 수밖에 없다. 여전히, 오베는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슬픔을 공유하지 않을 경우, 슬픔은 대신 서로를 더 멀리 밀어낼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p333


  사람들이 원칙을 깨고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것을 정리해 주면서 오베는 이웃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그것은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밀어내지 않고 공유하게 되는 그들의 정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는 이들의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라고 하면서도 생존을 들먹이며 공존을 무색케 하고 있다. 공존이라는 말과 방식이 있음에도 어느새 생존이 급박성을 강조하며 ‘경쟁’이 당연한 것처럼 만들고 있는 이 사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원칙이 무엇인지를 서로 잊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의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p436


  사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죽음을 향해 가기 전까지 좀 더 아름답게 살고 행복하게 죽고 싶은 것은 모두의 소망이다. 치열함이라는 게 꼭 필요한가. 남을 죽여야 내가 죽는 상황이 피해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만들어가는 상황이 지속되지만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돌아보면 작가의 말처럼, 내 사랑하는 이들이, 내 이웃들이 죽고 홀로 남겨진 나 자신이 가장 안쓰러운 모습이 아닌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행복하게 죽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으려면 우리 모두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오베와 같은 사람이 되고 오베의 이웃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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