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버릴 것 같은 날의 행복
프랑수아 를로르, 이지연 (그림)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폭염이 너무 길었던 탓이다. 삶이 지루하게 여겨지는 것까지야 어쩌랴 해도 온갖 감정의 세레나데에서 허우적대다, 마침내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딱히 불행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은 하루 하루가 잘도 흘러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가 아니라 결국엔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 욕심으로 인한 마음의 방랑을 폭염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심란으로 가려주어 오히려 폭염에게 감사해야 할 때인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해 머언 길을 떠난 정신과 의사 꾸빼 씨처럼 나 역시, 지금 이곳을 떠나 되돌아오면 행복을 끌어올 수 있을까. 도대체 행복이 무엇이기에!
행복이라, 그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고 시도하다가는 머리가 깨질 겁니다. 행복은 기쁨인가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요. 기쁨, 이것은 단순한 감정이고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단지 순간의 행복일 뿐이지요. 주의하세요. 그 순간을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을 수만 있다면야 좋겠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쾌락은? 아, 그래요! 모든 사람이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그것도 분명히 오래 가진 않아요. 그렇다면 행복이란 작은 기쁨들과 작은 쾌락들의 합계가 아닐까요? 내 동료 학자들은 ‘주관적인 행복’이라는 용어에 동의합니다. 물론 당신도 그 개념에 대해선 벌써 알 겁니다! p155
행복은 상대적이었다가 절대적이 된다. 이 삶에서의 행복이란 자꾸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생각이 흘러간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행복에 대한 잘못된 원인은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 지적인가.
꾸빼 씨가 행복여행을 통해 배운 행복에 대한 의미들은 결국 마음가짐,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전한다. 잘 알고 있는 말들이 어느 순간을 대하면 모두 잊혀진다는 것이 행복의 의미를 알고 있음을 무색케 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도 멀리의 것, 타인의 것을 찾고 비교하느라 행복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그것이 행복이라고 거듭 이야기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 역시 거듭된다. 반복적으로 마음가짐을 다잡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지만 의지와 기억력 부족만을 탓할 순 없다. 꾸빼 씨의 배움에도 나와 있듯이 바로 이러하니까!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이 행복에 대한 의미로 인해 의기소침해졌다면 꾸빼 씨가 찾아온 다른 배움의 의미를 또 끌어당겨 와 억지로라도 행복할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행복의 의미를 발견했으니 위의 말로 그 의미를 지워버려야지. 거센 폭우로 이 폭염을 지워버렸듯이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