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을 섞은 말


  은희경, 중국식 룰렛

  

     당신의 가장 큰 실수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평생 후회할 만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왜 묻지? 뭘 알고 싶어서? 삶의 후회와 실수를 타인에게 말하고 싶은가. 아니 타인의 진심을 알고 싶을 뿐이다. 내 진심은 거짓을 섞어 순도를 줄이면서 타인이 제 진심을 얘기할 거라 기대하는가. 그럼에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런 게임. 그것에 기대어서라도 상대의 진심을 추측할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별것 아닌 게임으로 위장해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드러내는 진심.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진실을 말하고픈, 진실을 듣고픈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일까. 진심이란 건 감추어야 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공교로운 운명은 악의를 감추기 위해 우연을 가장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p28, 중국식 룰렛


  내 삶의 거짓은 악의를 감추기 위함일까. 선의를 드러내기 위함일까. 그래서 그것은 나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고 있을까. 어떡하든 내 이기를 위해 거짓을 일삼았대도 삶은 그저 우연의 연속이라면 그렇다면 이젠 이렇게 말하리, 세상의 모든 불운과 행운에 건배!

 

미혹과 욕망이 수없이 나를 낭떠러지로 몰았지만 나는 한번도 거짓에 휘둘린 적은 없었다. 결과가 나쁘다 해도 지난 일을 편집하고 방어장치를 만들 만큼 비겁하지는 않았다. p133, 불연속선


  지난 삶에 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지난 삶이 아니라 다가올 삶에서조차도 “한번도 거짓에 휘둘리지 않을 것”을 자신하지 못하겠다. 거짓에 휘둘리기에 미혹과 욕망의 낭떠러지로 골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비참하게도 미혹과 욕망조차도 주지 않았다. 그것을 점하는 것은 정해져 있는 듯, 늘 밀려나가 있었다. 그렇기에 거짓에 휘둘린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절대 휘둘릴 수 없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이라고? 아니, 지금 이 삶의 결과는 정해진 채로 흘러가고 있다. 거짓과 진실을 얼마만큼 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비루한 삶으로의 낙인은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으려 바둥거리는 모습을 쳐다보며 게임처럼 즐기는 이는 따로 있다. 그렇기에 거짓의 비율이 조금이라도 높다면 몹시도 억울했을, 아니 진실의 비율이 높은 것이 더 억울한 것이 되려나. 마치 가진 자들의 게임판의 말이 되어 달그닥거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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