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누스 시리즈 5. 바람을 뿌리는 자
직관의 힘
그때까지 휴가 기분을 미처 떨치지 못하고 있던 스탠바이 모드에서 강력계 형사의 수사 모드로 완전히 돌아섰다. 직관과 육감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p45
추리소설에서 형사는 냉철하고 빠른 판단력과 남다른 두뇌가동력을 보이며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범죄자들 역시 형사들을 뛰어넘는 트릭과 교묘함으로 범죄를 벌이고 빠져나간다. 이들 간의 시소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타우누스 시리즈의 대표적인 형사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이런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다. 특히 다섯 번째 이야기에선 더 그런 듯하다. 마치 현실의 형사들처럼 내 집안일에 골머리를 앓고 그래서 허둥지둥하는 모습들, 개인 감정이 사건을 추리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특히나, 피아는 직관과 육감에 의지한다.
직관, 육감이 사건을 분석하고 추리하는 과정에서 제 역할을 잘 이끈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으랴. 때론 설명할 수 없는 육감이라는 것이 사건을 해결해주는 결정적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피아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내 직관이 맞았어.”
직관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내내 나타난다. 특히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사람의 사귐은 이 직관에 철저하게 의존하지 않는가.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마음이란, 거의 직관의 산물인 것을.
바람을 뿌리는 자는 폭풍을 거두는 법입니다! p331
<바람을 뿌리는 자> 는 시리즈 두 번째 <너무 친한 친구들>을 연상케 한다. 도로건설을 두고 찬반이 양립하는 가운데 발생한 살인 사건엔 수많은 용의자가 발생했다. 누군가가 죽음으로써 이득을 보는 세력이 많을수록 용의자는 늘어난다. 작가는 환경문제를 소설로 다루며 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한다. <바람을 뿌리는 자> 역시 환경문제를 다룬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풍력회사이며 풍력발전소 건설을 두고 시민단체와 기업 간의 대립이 진행되고 있다.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조작은 당연 이뤄지는 것이고 여전히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살인이었을까 의심해 볼만도 하지만, 넬레 노이하우스의 결정적 범인은 항상 눈에 크게 보이는 상황의 용의자가 아니라 숨겨져 있다가 드러나는 사람이다. 또한 권력과 돈을 쥔 이들의 온갖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도 하지만, 개인의 욕망에서 발현된 살인이 자주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번 편 역시 뻔해 보이는 이들은 용의자에서 제외하고 나면 누가 남고, 그들의 살인의 이유는 뭐가 될까.
살인의 이유는 열심히 설명한다 해도 많진 않은 것 같다. 돈, 질투, 분노, 원한…. 이런 감정의 요인들이 우발적인 상황과 겹치거나 아니면 의도와 겹치거나.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어린 마르크의 감정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건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그의 마음에 또다시 상처가 얹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인간을 믿는 직관은 어디서 연유하건대 거짓을 일삼는 이들에게 존경과 신뢰의 마음을 내어주었던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크게 실망을 하지.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거짓말쟁이들을 가려낼 수 있게 돼. p558
사람들에게, 어른들에게 거듭 배신당한 17세 소년 마르크의 절규에 피아는 위와 같이 말한다. 거짓말에 길들여지는 건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과정으로 들린다. 거짓과 위선을 가려내는 방법은 이성인 걸까, 직관인 걸까.
하나의 상황을 둘러싸고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끌어들여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사기, 배신, 음모를 꾸민다. 아니, 그런 것을 꾸미기 때문에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바람을 뿌리는 자는 결국엔 폭풍을 거둬가게 되는 사회가 된다면 좋으련만. 더한 폭풍의 격랑같은 감정에 휘말리게 되면 좋으련만.
타우누스 시리즈는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가 아니라 이중적이고 욕망덩어리인 인간을 선별하는데 더 유용한 것 같다. 한 사건에 연루되는 수많은 용의자들이 나와 자신들의 이기심이 당연한 듯 드러내는 모양을 보면서 그런 인간들을 가려내는 직관을 더욱 더 키울 수 있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