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을 불다가 터졌어
김중혁,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소설을 읽으면 대체로 나쁘지 않은 억양으로 “이게 뭐야”라며 킥킥거리게 된다. 이것을 단어로 표현하면 김중혁의 이야기는, 글은 재치가 있다라고 하면 되는 건가? 그래서인지 제목을 보고 작가의 이름을 보면서 떠올린 건 ‘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이었다. ‘가짜’는 진실하지 못한, 거짓이란 단어인데 가제트 팔이라니. 하지만 첫 이미지는 중요한 모양이다. 어느새 소설속 인물들에게서 가제트를 본다. 다양한 도구들을 뽐내며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가제트 자신의 마무리는 사실 허무하게 끝나 버리는 마는 것. 그렇지만 가제트는 그것을 모른다. 서툴고 엉뚱한.
여러 권의 소설집을 출간한 작가가 이번 소설집 <가짜팔로 하는 포옹>을 자신의 첫 번째 연애소설집이라고 말한다. 연애소설,집. 특별히 ‘연애소설’이라 말하는 이유가 다른 소설집과는 다른 차이가 있다는 얘기겠지. 여덟 편의 이야기가 어떤 ‘연애’를 품고 있을지. 김중혁 소설은 대화체가 많은 데다가 엉뚱함을 품고 웃을 수 있는 경쾌함으로 상당히 빨리 읽힌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설렘에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들어 있다. 설레며 고백하는 사람은 앞에 앉은 사람과 겪게 될 수많은 경험을 짐작하고 떠올리며 미리 행복해한다. 막연한 기대는 꿈꾸는 사람의 특권이다.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행복이라는 덩어리의 무게를 미리 재어보는 일, 그게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p222 <보트가 가는 곳>
연애소설이라 이름 붙였으니 더욱 재밌고 엉뚱한 연애소설이겠거니 생각하면, 역시 안된다. 연애가 뭐 별거냐, 사랑하는 이야기가 연애소설인 게지라고 한다면야 또 모르지만. 그런 설레임과는 마냥 다른 연애소설의 이야기이다.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나는 그때 네가 날 안아주길 바랐는데, 네 등만 봤다고. 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 p96 <가짜 팔로 하는 포옹>
표제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시종일관 술주정뱅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네가’ 지금 얼마나 힘들고 괴롭고 외로운지는 알겠지만 네가 그것을 술을 빌어 이야기하기에 나의 진심은 ‘네가 한 이야기’보다는 ‘네가 술을 먹고 하는 이야기’라는데 집중되는 듯하다. 말의 진실성이 말을 표현하는 방식에 묻혀 버리는 느낌. 그러니까 다 맞춰진 퍼즐처럼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음에도 처음부터 그냥 퍼즐이었던 상황이 되는 기분을 경험한다. 그러니, 그런 상태로 아무리 떠들어도 처음부터 우리에게 ‘과정’은 없었던 것이다.
그림을 다 맞추고 나면 새로운 걸 완성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고, 그냥 원래 있어야 할 것들을 제자리에 놓아둔 기분이야. 아버지는 밥상 뒤집어엎고 나가고, 나 혼자 남아서 반찬이며 밥이며 국물이며 사방에 엎질러진 걸 다 정리해놓고 소주 마실 때의 기분이랄까.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지? 그런 기분이 갑자기 들어. 다 맞춰진 퍼즐을 보고 있으면. p93 <가짜 팔로 하는 포옹>
풍선을 크게 불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빠져 쪼글쪼글해진 풍선을 보고 있는 기분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내 상태를 나타내는 말 같다. 분명 책을 읽는 과정은 있었는데 여전히 완성된 퍼즐을 보고 있고 그 과정은 어딘가 뿌연 기분이 마냥 드는 것. 이것은 먹먹함과는 다르다. 약간 모호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가만 생각해 보면 그저 무심함인 것도 같다. 그래, 사는 게 그런 거지라고 내뱉어 지는.
바닷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바닷물의 일부가 되는 물의 심정. 그런 게 한 개인의 종말일 것이다. 바다는 연신 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시치미 뚝 떼고 늘 변함없다는 듯 출렁이고 있다. 생명이란 저렇게 무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p222 <보트가 가는 곳>
그런들 저런들 어떠리. 정말로 그렇대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감정이란 늘 격랑이니까. 관계란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런 것. 오랜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볼 때는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서 겪는 사랑의 감정이란 폭풍과도 같은 것이기에 가짜 팔로 해주는 위로라도 필요한 것일지도. 가짜 팔로라도 건네는 위로로 폭풍을 잠시 잊을 수도.
그래, 요요로 하자.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는 시간.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요요의 시간으로 하자. 그래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아. p300 <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