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점검은 날마다 필요하다


 

    중학생 조카가 <제인 에어>를 들고 나왔다.

    “그 책은 너 취향 아니잖아? 읽으려고?”

    “어. 지금 롤점검 중이야. 게임을 할 수가 없어”

   그래도 게임 대신 선택한 것이 책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TV가 없던 시절엔 나름 열심히 책을 읽더니, 중학교에 들어가고 핸드폰도 생기면서 책하고는 거리를 쌓았다. 특히나 감성적인 애도 아니라 문학책에 대해서는 더욱 더 관심이 없는 남학생이다. 그래도 책갈피가 반페이지에 있는 것으로 봐선 거기까진 읽은 모양이다.

  

  “고전을 읽으라 해서 읽는데 재미없어. 초반엔 그나마 재밌는데 갈수록 더 그래”

  “좀 더 읽다 보면 재밌을 거야. 연애 얘기도 나오고”

   “뭐? 연애?”

  여학생들이라면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사랑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을 텐데, 그 말에 더 이상 읽을 이유가 없다는 듯 도리도리 고개질 하는 조카를 보며 급 방향을 선회했다.

  “읽다 보면 재밌어. 추리도 좀 나올 거고”

  제인 에어를 추리라고 소개하다니. 웃음이 나왔지만 어쨌든 덕분에 제인 에어가 생각나고다시 들여다볼 마음이 들었다. 여학생이라면 제인 에어는 몇 번을 읽었을 텐데. 제인 에어의 어릴 적 학대에 마음 아파하고 로체스터와 제인 에어의 사랑이야기에 마음 졸이고, 돈필드 저택을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어떤 운명을 향해 나아갈지를.

  책을 소유하고 있다는 장점은 생각이 날 때 펼쳐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제인 에어를 읽을 당시엔 <폭풍의 언덕>과 비교하며 작가 샬롯 브론테와 그녀의 동생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책 속의 주인공들의 성격이 각자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브론테 자매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많은 작품을 남기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고전에 자신의 작품들을 남겨놓고 있다. 1800년대의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읽고 있고 읽고 싶은 책, 읽어볼 만한 책으로 꼽고 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중학생이던 때, 제인 에어를 읽고 세인트 존을 좋아한다는 친구가 있어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제인 에어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분리해서 보면 그 친구의 선택이 전자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해가 된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선택해 주는 사람과의 결혼을 강요받던 시대, 강요받던 여성이 자신의 결정으로 사랑과 결혼을 이루는 이야기는 수많은 여성들에겐 얼마나 환상적으로 다가왔을지.

  제인 에어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아이기 때문에 겪었던 수많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것이 수많은 여성 독자들을 매료시킨 이유일 것이다. 지금 따져보자니 로체스터의 행동들은 많은 논란의 여지를 준다. 사실 세세하게 따져보면 매우 충격적이다. 자기중심적인 것을 떠나 로체스터의 행동은 현대에서는 비난에서 그치지 않는 범죄 수준이다.

  나이가 들어서 때때로 예전의 책들이 다시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때의 느낌, 이미지, 문장, 이야기, 그리고 그 책을 읽을 당시의 ‘나’가 그리워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책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머리가, 냉소적으로 문제를 지적하듯 보게 되는 책도 있었다. 제인 에어도 가끔 생각날 때, 다시 읽게 되면 중학생 때 느꼈던 로체스터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변해지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180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 제인 에어의 시점으로 읽어 나가면 다시금 그 마음으로 보게 될지 어떨지.

  인생이란 어떤 책을 읽어야 되는 나이가 있긴 한가 보다. 지금 생각하면 학창시절 이 책을 읽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그래서, 조카에게 제인 에어의 페이지가 조금 더 넘어가게 도와준 롤점검에게 큰 공을 돌리고 싶다. 나 또한 덕분에 제인 에어에 대해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롤점검은 매일 하면 좋겠다. 특히나 방학 즈음, 그 시간만큼이라도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어떤 책을 읽고 감흥을 느끼는 건 개인차, 취향이기도 하지만 ‘시기’라는 것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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